1. 서론
리듬은 언어에 자연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L2 학습에서도 리듬은 지각과 산출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다른 운율요소와 마찬가지로 모국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L2 리듬에 대한 모국어의 긍정적 또는 부정적 전이 양상에 대한 이해는 L2 리듬의 오용을 수정하거나 L2 리듬의 습득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 본 연구는 목표어(L2)의 리듬구조에 미치는 모국어(L1)의 리듬구조의 영향을 살피는 것으로 일본인 한국어학습자들의 한국어 문장 낭독에서 나타나는 리듬의 실현양상을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언어마다 고유한 리듬이 있음을 처음으로 주장한 학자는 Lloyd(1940)이며 이후 Pike(1945), Abercrombie(1967)에 의해 음성언어의 리듬은 강세박자언어, 음절박자언어로 나누어졌고 이 두 부류에 모라박자언어가 추가되면서(Ladefoged, 1975) 언어의 리듬은 적어도 이 세 부류 중 하나로 정의되었다(Nespor et al., 2011 재인용). 영어와 독일어는 대표적인 강세박자언어이며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는 음절박자언어, 일본어는 대표적인 모라박자언어로 분류된다. 강세박자언어는 강세를 받는 음절 간 간격인 음보(foot)가 음절수와 상관없이 거의 동일한 간격으로 실현되는 언어로 음보의 음절수가 많으면 발화속도가 빨라지고 음절수가 적으면 발화속도가 느려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음절박자 언어는 모든 음절의 길이가 유사하게 실현되며 발화단위의 길이는 음절수에 따라 증가 또는 감소하게 된다. 모라언어는 음절을 구성하는 모라의 길이가 비슷하게 생성되며 각 음절의 길이는 모라의 수에 의해 결정되는 언어이다. 이 세 부류의 언어에서 시간적 등간격성이 실현되는 단위는 각각 음보, 음절, 모라로 음운론적 층위가 다르다.
하지만 음성언어의 리듬은 물리적인 실체로 규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청지각적으로 강세박자 또는 음절박자 언어로 명확히 구분되는 두 언어에서 음보의 길이나 음절의 길이가 항상 물리적인 등간격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일부 학자들은 언어의 리듬을 물리적 실체가 아닌 청각적 인상(심리적 실체)으로 간주하기도 했다(Beckman, 1992). Dauer(1983)는 강세박자 언어나 음절박자 언어로 인지되는 청지각적 리듬의 차이는 각 언어의 음운론적 속성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고 하였다(Nespor et al., 2011 재인용). 특히 음절 유형, 모음약화현상(vowel reduction), 단어강세의 유무가 리듬 범주를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밝혔다. 즉 강세박자 언어는 음절박자언어보다 다양한 음절유형, 모음 약화 현상(vowel reduction), 단어 강세가 존재하며 이런 음운론적 특성은 강세박자언어로 지각되게 하는 주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 반면 음절박자언어는 비교적 제한적인 음절유형을 가지며 모음 약화나 단어강세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러한 특성은 음절이 동일한 길이로 인지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후 많은 연구에서 Dauer(1983)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분석방법(%V, ∆V, ∆C, VarocV, VarocC, PVI(pairwise variability index) 등)이 제시되었고, 그 결과 강세박자 또는 음절박자 언어로 분류된 언어들은 문장에서의 모음비율, 자음과 모음의 표준편차, 자음과 모음의 지속시간의 변동 범위 등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White & Mattys, 2007; Nespor et al., 2011; Ramus et al., 1999).
제 2언어 습득에서도 유창성과 자연성이 중요시됨에 따라 리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Gut(2003)는 독일어와 폴란드어, 중국어, 이탈리아어를 대상으로, White & Mattys (2007)는 영어, 네덜란드어, 스페인어를 대상으로, Tortel & Hirst (2010)는 불어와 영어를 대상으로 언어 간 상호작용을 분석하였다. 이들 연구는 연구자나 측정방법에 따라 다소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학습자의 모국어에 따라 목표어의 리듬이 다르게 나타나며 L2 언어의 리듬은 L1과 L2의 중간 언어적 양상을 띤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Grenon & White, 2008 재인용).
한국어와 일본어는 각각 음절박자와 모라박자 언어로 분류된다. 두 언어는 음절 구조, 음소 배열, 단어 강세 등 음운론적 속성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두 언어의 리듬 구조에 반영되어 고유한 리듬을 부여한다고 할 수 있다. 두 언어의 이러한 음운론적 차이가 일본인 한국어 학습자들의 한국어 발화에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본 연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2. 한국어와 일본어의 리듬구조1
상기한 바와 같이 한국어는 음절박자언어로, 일본어는 모라박자언어로 분류된다. 하지만 한국어의 리듬 구조에 대해서는 음절박자언어(Han, 1964), 강세박자언어(Ji, 1993), 강세박자와 음절박자의 성질을 모두 가진 언어(성철재, 1995) 등 다양한 의견이 공존한다(Mok & Lee, 2008 재인용). 그러나 비교적 최근 다양한 측정방법으로 실시된 연구(Mok & Lee, 2008) 결과와 음운론적 속성에 근거한다면 한국어는 음절박자언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음절박자언어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어는 음절이 최소 소리단위이자 리듬단위가 된다. 한국어의 음절은 V, GV, VC, GVC, CV, CGV, CVC, CGVC 등 8개의 유형으로 실현된다. 한국어의 음절은 유형빈도와 출현빈도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유형빈도는 폐음절이 우세하나 출현빈도는 개음절이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신지영, 2008). 이는 표기와 발음 간의 불일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반면 모라박자언어인 일본어는 음절보다 하위의 단위인 모라가 최소 소리단위가 된다. 모라, 즉 박은 길이가 기준이 되는 시간 단위로 하나의 모라는 단모음(V)이나 자음과 단모음(CV)으로 이루어진 짧은 음절 하나의 길이에 해당한다. 각 모라는 시간상 유사한 길이로 실현되는 경향이 있다. 일본어는 자음과 모음이 결합된 CV를 음절의 기본구조로 가지며 이에 ‘V’와 ‘CVC’ 구조가 더해진다. 그러나 CVC 음절이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으로 음절 말에 자음이 오거나 자음이 연속할 경우에만 나타난다. 또한 음절 말에 올 수 있는 자음도 매우 제한적으로 주로 비음이 온다. 따라서 일본어는 CV 음절을 기본으로 하는 대표적인 개음절 언어가 된다. CV와 V는 하나의 음절을 이루며 동시에 하나의 모라를 형성하므로 이 경우 음절과 모라는 일치한다. 그러나 CVC의 경우 종성이 단독으로 하나의 모라를 형성할 수 있으므로 한 음절에 두 개의 모라가 존재하게 되고 음절과 모라는 일치하지 않게 된다. 일본어에서는 종성 비음처럼 음절 내에서 단독으로 모라를 형성하는 세 개의 특수박이 존재하는데 발음 /N/, 촉음 /Q/ 그리고 장음 /R/ 이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일본어의 음절구조와 모라구조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표 1과 같다2.
음절유형 | 음절 수 | 모라 수 | 예 | 길이 |
---|---|---|---|---|
(G)V | 1 | 1 | a あ | 단음절 |
C(G)V | 1 | 1 | ko 子 | |
CVN | 1 | 2 | KoN 紺 | |
장음절 | ||||
CVQ | 1 | 2 | kok(ka) 国家 | |
CVR | 1 | 2 | ko: 甲 | |
CVRN | 1 | 3 | pjo:N ピョーン(と飛ぶ) | |
CVRQ | 1 | 3 | ka:t(to) カーッ(となる) |
일본어의 음절 유형 중 1모음(V), 1반모음+1모음(GV), 1자음+1모음(CV)은 하나의 음절이 하나의 모라를 이루며 단음절로 실현된다. 그러나 1자음+1모음+1특수음소(/N/, /Q/, /R/)은 하나의 음절이 두 개의 모라로, 1자음+1모음+2특수음소 (/R/+/N/ 또는 /R/+/Q/)는 하나의 음절이 3개의 모라로 이루어지며 장음절로 산출된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리듬구조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특수박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특수박의 존재로 음절과 모라가 일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어 특수박 중 장음 /R/은 한국어에서 대응 음소라 할 수 있는 장모음이 더 이상 변별력을 가지지 않으므로 한국어 교육에서도 장모음에 대한 교육을 특별히 실시하지 않는다. 발음인 ‘ん /N/’는 역행동화에 의해 뒤에 오는 자음의 성질에 따라 /m/, /n/, /ŋ/, /ɲ/, /N/, /Ṽ/의 여러 변이음으로 실현된다. 양순파열음 /p/, /b/와 양순비음 /m/ 앞에서는 [m]로, 치음 /t/, /d/, /n/, 치조음 /ts/, /ʧ/, /dz/, /ʤ/, 권설음 /r/ 앞에서는 [n]로, 연구개 파열음 /k/, /g/와 연구개 비음 /ŋ/ 앞에서는 [ŋ]으로, 치조 경구개음 /ɲ/ 앞에서는 [ɲ]로 완전 동화되어 발음된다. 그리고 자립어의 어말위치와 문장 끝에서는 [N]로 발음되며, 어중 위치의 모음 앞에 위치하면 뒤에 오는 모음에 가까운 비모음으로 발음된다. 촉음 ‘っ /Q/’도 후속자음의 성질에 동화되어 다양한 변이음으로 실현된다. 무성양순 파열음 /p/, 유성양순 파열음 /b/, 유성 치경파열음 /d/, 무성연구개 파열음 /k/, 유성 연구개 파열음 /g/, 무성 치마찰음 /s/, 무성 치경마찰음 /ʃ/가 뒤따르는 경우 후행 자음에 완전 동화되어 각각 [p], [b], [d], [k], [g], [s], [ʃ]로 발음된다. 그리고 무성 치경 파열음 /t/, 무성치경 파찰음 /ʧ/, 무성치파찰음 /ts/ 앞에서는 [t]로 발음된다(김예영, 2007).
일본어의 발음과 촉음은 한국어 종성과 유사한 소리로 음절 내에서의 위치 또한 비슷하다. 발음 /N/는 한국어의 비음 종성/m/, /n/, /ŋ/과, 촉음 /Q/는 장애음 종성과 유사하다. 단 일본어의 촉음이 대부분 후행 자음의 조음위치에 동화되는 반면 한국어 장애음 종성은 먼저 대표음으로 중화된 후 후행 자음과의 연결과정에서 음운규칙이 적용된다는 차이가 있다.
결론적으로 일본인 학습자들은 모국어의 영향으로 인해 한국어의 CVC 음절을 두 개의 모라로 인식하여 한국인 화자와 다른 리듬으로 발음할 가능성이 높다.
3. 연구방법
본 연구에 사용된 분석 문장은 아래에 제시된 ①–⑥의 6 문장이다.
① 이곳에서 탄산가스가 빠져나와서 피부에 들어간다.
② 아침부터 머리가 무거워서 오전수업에 가지 못했다.
③ 하늘에 무지개가 나타나서 어머니가 아주 좋아하셨다.
④ 이 지역에 차나무가 많아서인지 나비떼가 자주 날아온다.
⑤ 올해는 물가가 많이 올라서 서민들이 생활하기가 더 힘들다.
⑥ 세시부터 수영경기가 시작되니까 선수들이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분석 문장은 자연스러운 리듬이 생성되도록 3–5음절 어절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이 어절들이 문장의 연결어미를 기준으로 선행절과 후행절에 각각 2–3개씩 위치하고 있다. 분석 문장에는 (G)V, C(G)V, VC, CVC 음절이 적절히 혼합되어 있으나 CV의 비중이 71.74%로 가장 높다. 그리고 VC와 CVC 음절의 경우 종성은 주로 비음 /n/, /m/, /ŋ/이 위치한다.
본 연구의 발화 실험에는 4명의 한국어 원어민화자와 10명의 일본인 한국어학습자들이 참여하였다. 4명의 원어민 화자는 서울 및 경기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20대 초·중반의 남성화자 3명과 30대 초반의 여성화자 1명이다. 이들은 모두 발화에 특이한 문제점이나 개인적 특수성을 보이지 않으며 표준어의 전형적인 발음과 억양을 구사하는 화자들이다. 일본인학습자들은 도쿄 방언을 구사하는 20대 초·중반의 남녀 대학생 및 대학원생 10명(남: 2명, 여: 8명)이다. 이들은 대학에서 2년 이상 한국어를 학습하였고 한국어 능력시험 4급 이상의 합격자나 그에 준하는 실력을 가진 고급 수준의 한국어 학습자들이다.
녹음은 방음 스튜디오와 조용한 방에서 실시하였고 Sony사의 디지털 녹음기 ICD-SX713과 내장 마이크를 사용하여 44,000 Hz, 16 bit 모드로 녹음하였다. 녹음에 참여한 피험자들은 각 문장을 보통 속도로 3번씩 반복 낭독하였다. 낭독 중 오류나 더듬거림이 발생할 경우 문장 전체를 다시 낭독하게 하였다. 일본인 학습자들의 경우 자연스러운 발화를 유도하기 위해 각 문장의 의미를 이해시키고 낭독 연습을 하게 하였다.
지금까지 언어 내, 그리고 언어 간 리듬구조를 기술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론이 제시되었다. Ramus et al.(1999)은 자음과 모음의 지속시간을 바탕으로 문장에서 모음이 차지하는 비율(%V), 자음과 모음의 표준편차(∆V, ∆C)를 통해 언어의 리듬을 분석하였고, Dellwo(2006)는 변동계수(variation coefficient)를 통한 자음(VarcoC)의 지속시간의 변동범위를 기준으로 언어의 리듬을 측정하였다. 이후 동일한 방법으로 계산된 모음(VarcoV) 지속시간의 변동범위 또한 언어 리듬 측정에 사용되었다. Grabe & Low (2002)는 문장 내에서 서로 인접하는 자음과 모음의 연속적인 시간 변화(sequential temporal variability of vowel and consonants), 즉 이웃하는 자음과 모음의 연속단위 변동지수(PVI)를 분석방법으로 리듬을 기술하였다(Gut, 2012 재인용). 이들은 모두 자음과 모음의 지속시간(consonant and vocalic intervals)을 기본단위로 하는데 모음의 길이는 자음과 자음 사이의 모든 모음 구간으로, 자음의 길이는 모음과 모음 사이의 모든 자음 구간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음절이나 단어경계는 무시된다.
상기된 방법들은 연구자의 측정 방법에 따라 측정값의 편차가 크게 나타나는 문제점도 지적되었지만(Gut, 2012) 강세박자언어와 음절박자언어로 구분되는 언어들의 물리적 특성을 대체로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문장에서 모음이 차지하는 비율(%V)은 강세박자언어보다 음절박자언어로 분류되는 언어들에서 높게 나타나며, 모라박자 언어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다(Nespor et al., 2011). VarcoV는 강세박자언어에서 높고 음절박자언어에서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결과는 상기한 바와 같이 강세박자언어와 음절박자언어, 그리고 모라박자언어의 음운론적 속성에 기인한다. 즉 음절구조가 복잡하고 모음약화현상이 나타나는 강세박자언어에서 %V는 낮게, VarcoV는 높게 나타난다.
본 연구에서는 발화속도의 변화와 L1-L2 간 상호작용을 비롯한 언어 간 차이 비교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언급된(White & Mattys, 2007) %V와 VarcoV, 그리고 음절 길이의 변화양상을 포착할 수 있는 VarcoS를 통해 한국인화자와 일본인학습자들의 리듬 차이를 분석하고자 한다. %V, VarcoV, VarcoS는 각각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V: (vocalic duration/sentence duration)×100
VarcoV: (∆V/mean vocalic duration)×100
VarcoS: (∆S/mean syllabic duration)×100
%V는 각 문장에서 모음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며 각 문장의 모음구간의 합계를 각 문장 의 길이로 나눈 후 100을 곱하여 구한다. VarcoV는 문장 내 모음길이의 표준편차를 모음의 평균 길이로 나눈 후 100을 곱하여 산정하고, VarcoS는 문장의 음절길이의 표준편차를 음절의 평균 길이로 나눈 후 100을 곱하여 산정한다. VarcoV와 VarcoS는 발화속도를 통제한 모음구간과 음절길이의 변동범위를 파악하는 데 사용된다.
한국어(L1)와 일본어(L1)의 리듬 구조를 위의 측정법으로 비교한다면 %V는 일본어에서, VarcoV는 한국어에서 높게 나타날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일본어가 한국어보다 개음절 비율이 높고 음절구조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VarcoS는 모라언어인 일본어가 한국어보다 높게 나타날 수 있다. 한국어는 음절을 구성하는 음소의 수에 따라 음절 길이가 증가 또는 감소할 수 있지만 일본어는 1박의 길이를 가지는 모라 수에 따라 음절 길이가 증가 또는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기된 일본어의 리듬적 특징이 일본인 한국어학습자들의 한국어 문장 낭독에 간섭으로 작용한다면 %V는 한국화자보다 일본인 화자에서 높고(%V: 한국화자<일본화자), VarcoV는 한국화자보다 일본화자에서 낮게 나타날 것이다(VarcoV: 한국화자>일본화자). 그리고 VarcoS는 한국화자보다 일본화자에게서 높게 나타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VarcoS: 한국화자<일본화자).
4명의 한국인화자와 10명의 일본인화자는 모두 252문장을 생성하였다(KS: 4명×6문장×3회=72문장, JS: 10명×6문장×3회=180문장). 개인별로 녹음된 낭독 자료는 Praat를 사용해 각 문장별로 모음, 자음, 음절, 운율구, 문장의 길이를 수작업으로 측정하였다. 자음과 모음의 길이는 음성 파형과 스펙트로그램을 바탕으로 측정하였는데 모음 길이(vocalic interval)는 음절이나 단어경계를 무시하고 연속하는 모든 모음 구간을, 자음 길이는 모음과 모음 사이의 구간(intervocalic interval)을 측정하였다. 모음과 자음의 지속시간 측정에서 종성에 위치한 연구개 비음 /ㅇ/과 유음 /ㄹ/는 선행 모음과의 경계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고모음과의 연쇄에서 분리가 용이하지 않았다. 그림 1은 한국화자가 발화한 ‘물가가’의 음성파형(맨 위창)과 스펙트로그램(두 번째 창)인데 첫음절 /물/에서 중성 /ㅜ/와 종성 /ㄹ/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본 연구에서는 이 모음들을 분석에서 제외하였다.
음절길이는 음절의 시작과 끝까지의 길이로 음절을 구성하는 자음과 모음의 경계는 고려되지 않았다. 음절경계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종성 장애음과 초성 장애음이 연쇄되는 경우 종성 장애음이 미파되고 후행 장애음의 폐쇄구간과 연쇄되는데 이 경우 음절경계를 확정짓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림 2는 한국화자가 발화한 ‘시작되니까’의 음성파형과 스펙트로그램으로 둘째음절 /작/의 종성 /ㄱ/와 세 번째 음절 초성인 /ㄷ/가 연쇄된다. 연쇄된 종성 /ㄱ/와 초성 /ㄷ/의 폐쇄구간이 흰 공백으로 이어져 음절경계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경우 선·후행 음절 모두 음절길이 분석에서는 제외하였다. 운율구(강세구, 억양구)의 길이는 그 내부에 포함된 음절 길이의 합으로, 각 문장의 길이는 문장을 구성하는 운율구 길이의 합으로 산정하였다. 쉼은 문장길이에서 제외되었다. 운율구의 초성 장애음이 긴 휴지 기간(pause) 후에 생성된 경우 장애음의 폐쇄구간을 확정하기 어려웠으므로 운율구 초성 장애음은 모두 VOT만을 자음의 길이로 측정하였다. 반면 문장 끝에 위치한 ‘들어간다’, ‘가지 못했다. 좋아하셨다. 더 힘들다는 쉼 다음에 실현된 경우가 없었으므로 폐쇄기간은 자음 길이에 포함되었고 한국화자와 일본화자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이와 더불어 각 문장별로 강세구와 억양구의 경계를 확정하였다. 억양구 경계는 문장 내에 위치한 경계와 문장 끝에 위치한 억양구를 모두 포함한다.
4. 연구 결과
한국인화자(KS)와 일본인학습자(JS)가 산출한 각 문장에서 모음이 차지하는 비율의 평균값과 모음구간의 변동 양상은 그림 3, 그림 4와 표 2, 표 3에 제시되었다. 그림 3은 KS와 JS의 문장별 %V와 VarcoV를, 그림 4는 화자별 평균 %V와 VarcoV를 나타낸다. 표 2와 표 3은 각 그룹별 평균 %V와 VarcoV를 나타낸다.
그림 3과 그림 4에서 알 수 있듯이 %V는 예상과 달리 KS보다 JS에서 낮게 나타난다. 그림 4를 보면 10명의 JS 중 1명을 제외한 9명의 모음 비율은 모든 KS보다 짧게 실현되었다. 표 2의 전체 평균값을 살펴보면 각 문장에서 모음의 비율은 KS 59.23%, JS 54.56%로 한국인화자들의 모음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t-검정 결과, t(250)=–3.893, p<.000으로 두 그룹의 모음 비율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인 학습자들은 모라박자언어인 모국어의 발화습관으로 인해 한국어 문장 낭독에서도 모음의 비율이 KS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KS보다 낮은 모음 비율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 또한 일본어와 한국어의 음운론적 속성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두 그룹의 모음 비율의 차이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운율구(강세구, 억양구)별로 모음비율을 살펴보았다. JS의 모음비율이 가장 낮은 운율구는 /아침부터/, /세시부터/, /가지 못했다/, /하고 있다/ 등으로 이들 발화구의 모음비율은 KS보다 현저히 낮게 나타난다. 4개의 발화구에서 나타나는 모음의 평균 비율이 KS가 49.97%인 반면 JS는 42.43%이다. t-검정 결과, t(166)=–6.014, p<.000으로 4개의 발화구에서 나타나는 두 집단의 모음의 비율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결과는 일본어 음운체계의 영향으로 인한 일본인학습자들의 발음 특성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인 화자들은 ‘세시부터, 아침부터, 가지 못했다, 하고 있다’를 각각 [세시부터]. [아침부터], [가지모태따], [하고이따]로 발음했지만 일본인 학습자들은 대부분 [세시붇터], [앋침붇터], [가지몯탣따], [하고읻따] 로 발음한다. 이는 /ㅌ/, /ㅊ/, /ㄸ/ 등 격음이나 경음이 초성에 위치하는 경우 선행 음절 종성에 미파되는 장애음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음 방식은 청지각적으로도 명확히 인지되며 음향적으로 폐쇄구간의 지속시간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그림 5는 KS, 그림 6은 JS가 발화한 /아침부터/의 음성파형과 스펙트로그램인데 두 그림에서 첫음절 [아]와 세 번째 음절 [부]의 모음 구간에 연이은 긴 폐쇄구간을 확인할 수 있다. 폐쇄 구간은 KS보다 JS에서 더 길게 나타난다. 이러한 발음 방식은 모국어에 존재하지 않는 격음과 경음을 발음하기 위해 KS보다 긴 충분한 길이의 폐쇄구간이 필요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또한 /하고 있다/의 경우 모국어의 자음연쇄로 인지한 발음 방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발음습관은 각 발화구나 문장에서 자음구간의 증가를 유발하고 모음 비율을 낮추는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일본인학습자들의 비음 종성의 길이 증가도 모음 비율을 낮추는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일본어 종성에 위치하는 비음은 단독으로 모라를 형성해 1박의 길이를 가지는데 이는 한국어의 종성 비음이 선행하는 음절 핵과 결합해 하나의 음절, 하나의 시간단위를 이루는 것과 대조된다. 일본인학습자들의 비음종성이 한국인화자와 다른 시간구조로 실현되었는지 조사하기 위해 발화구에서 차지하는 비음 종성의 비율을 분석하였다. 선행모음과의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ŋ/을 제외한 /n/, /m/가 포함된 8개의 발화구인 /탄산가스가/, /오전수업에/, /서민들이/, /준비운동을/, /많아서인지/, /선수들이/, /아침부터/, /더 힘들다/에서 밑줄로 표시된 음절의 비음 종성 /n/와 /m/를 대상으로 하였다. 그 결과 종성 비음의 평균 비율은 KS 9.97%, JS 11.56%로 일본인 화자들의 종성 비음이 한국화자보다 길게 실현되었다. JS에서 보이는 종성 비음의 길이 증가 또한 종성비음이 한 박의 길이를 지니는 모국어 발화습관의 영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t-검정 결과, t(220.754)=5.103, p<.000으로 두 집단의 종성 비음의 비율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인학습자들의 모음 구간 비율이 낮은 또 다른 원인으로 운율구 경계음절에서 나타나는 장음화의 차이를 들 수 있다. 한국어의 억양구 경계를 구별 짓는 음성적 특징 중 하나는 경계음절의 장음화이다. 문장경계, 즉 문장 끝에 위치한 억양구경계에서도 문장 내에 위치한 억양구경계보다는 약하지만 장음화가 일어난다. 일본인학습자들의 한국어문장 낭독에서도 억양구경계음절의 장음화가 일어나지만 평균적으로 한국화자들보다 약하며 문장경계에서는 장음화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관찰되었다. 장음화 정도가 문장의 모음비율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기 위해 두 그룹의 장음화 정도를 조사하였다. 경계음절의 장음화는 해당 발화구에서 억양구 경계음절 모음의 길이가 차지하는 비율로 조사하였다. 결과는 KS 23.06%, JS 18.91%로 KS에서 장음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t-검정 결과, t(665)=–7.096, p<.000으로 두 그룹 간 경계음절 장음화 비율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KS와 JS에서 나타나는 모음 비율의 차이는 부분적으로 경계음절 장음화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KS와 JS가 산출한 각 문장에서 모음 지속시간의 변화정도는 VarcoV로 측정하였고 결과는 위의 그림 3과 그림 4, 표 3에 제시되었다. VarcoV는 한 문장 내에서 모음 길이의 표준편차를 모음의 평균 길이로 나눈 후 100을 곱하여 구하며 발화속도를 통제한 모음 구간의 변화 양상을 나타낸다.
KS와 JS의 VarcoV는 각각 48.84와 45.94로 예상한 바와 같이 일본학습자들의 VarcoV가 근소한 차이로 낮게 나타난다. 이는 일본인학습자들의 모음 지속시간의 변화정도가 한국인화자보다 약함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VarcoV는 음절 유형이 단순하고 모음약화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언어에서 낮으며 음절구조가 복잡하고 강세음절과 비강세음절의 발음 차이로 비강세음절에서 모음약화현상이 나타나는 강세박자언어에서 더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본 연구의 결과도 CV의 비율이 높은 분석 자료를 발화할 때 모라박자언어인 모국어의 음운론적 속성에 따라 한국어의 CV 음절을 1 모라의 길이로 발음하려는 습관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그룹에서 측정된 VarcoV는 t-검정에서 t(250)=–2.740, p=.007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음절박자언어로 알려진 한국어에서 음절은 리듬의 최소단위가 되며 한 음절 내의 구성요소들은 시간 상 하나의 단위로 인식된다. 그 반면 모라박자 언어인 일본어에서는 하나의 음절이 1개 이상의 시간 단위, 즉 모라로 분리될 수 있다. 하나의 모라로 구성된 단음절은 한 박의 길이로, 두 모라로 구성된 장음절은 두 박의 길이로 실현되므로 음절의 길이는 한국어보다 일본어에서 길이 변화가 더 심하게 나타날 것이다. 일본어 모국어의 음절구조의 특성이 한국어 발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기 위해 두 그룹의 음절길이 변화(VarcoS)를 각 문장별로 측정하였다. 결과는 표 4에 제시되었다.
VarcoS는 KS 35.51, JS 34.50으로 유사한 값으로 나타났다. KS와 JS의 낭독발화에서 음절길이의 변화정도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데 t-검정 결과에서도 t(111.429)=–.945, p=.347로 두 그룹의 VarcoS는 유의미한 차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분석자료에서 CV 음절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도 한 원인일 수 있다. 한국어의 V와 CV 음절은 한국어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어에서도 하나의 음절이자 하나의 시간단위이므로 두 언어에서 시간 구조 상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리듬 구조에서 나타나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가장 큰 차이는 리듬 단위의 차이이며 더 나아가 일본어 특수박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일본어에서 특수박은 음절과 모라의 불일치를 야기하며 음절의 길이를 재조직한다. 한국어의 음절유형 중 일본어 리듬의 간섭이 가장 강하게 나타날 수 있는 음절 유형은 종성이 포함된 VC와 CVC 유형이다. 한국어의 VC와 CVC 음절은 한국 화자에게는 하나의 시간단위이지만 일본 화자에게는 종성 자음이 특수박으로 인지되어 두 개의 시간단위로 발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어 리듬의 간섭현상이 음절 유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음절유형을 개음절(V, CV)과 폐음절(VC, CVC)로 나누어 음절길이의 변화양상을 살펴보았다. 폐음절은 종성에 비음이 위치하는 음절만을 대상으로 하였고 비음 외 다른 음소가 위치한 음절은 제외되었다. 분석은 위의 음절 유형이 모두 나타나는 ①, ②, ④번 문장을 자료로 하였다. 이 문장들에서 (G)V, CV는 개음절로, 비음 종성의 VC, CVC는 폐음절로 분류되었다. 개음절과 폐음절의 길이 차이는 평균값을 통해 살펴보았는데 결과는 그림 7에 제시되었다. 그림 7은 개음절 길이를 기준(100)으로 나타낸 폐음절 길이의 비율을 그룹별로 나타낸 것이다.
그림 7에 제시된 바와 같이 KS의 경우 폐음절의 길이는 개음절에 비해 약 1.18배 증가했으나 JS는 1.41배 증가해 한국화자와 다른 증가율을 보인다. 이는 일본인 학습자들이 한국어의 비음 종성을 하나의 모라로 인식하여 VC나 CVC 음절을 두 모라나 그에 준하는 길이로 발음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일본인학습자들에게서 나타나는 VC와 CVC 음절의 길이 증가율은 한국화자들에게서처럼 단순히 음절 구성요소의 증가나 감소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국어의 리듬체계의 영향을 받음을 시사한다. 즉 한국인화자들의 음절길이가 음성적으로 실현된다면 일본어학습자들의 경우 음운론적 변별력을 위해 생성된 모국어의 간섭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국어 리듬체계의 간섭현상은 고급 수준의 학습자들에게서도 어느 정도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결과는 한국어를 발화하는 일본인 학습자들에게서 관찰되는 독특한 리듬을 구성하는 음향적 변수들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5. 결론
본 연구에서는 한국어를 학습하는 일본인학습자들의 한국어 문장 낭독에서 나타나는 모국어 리듬체계의 간섭현상을 조사하였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유형론적으로 서로 다른 리듬구조를 가진다. 한국어는 음절박자언어로, 일본어는 모라박자언어로 구분된다. 두 언어에서 리듬을 조직하는 기본단위는 각각 음절과 모라로 음운론적 층위가 다르다.
두 언어의 리듬 구조는 선행연구에서 제시된 측정방법인 %V, VarcoV, VarcoS를 중심으로 비교‧분석하였다. 분석결과, %V와 VarcoV, VarcoS에서 모국어의 영향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한국어 화자보다 낮은 모음비율을 보인 %V는 두 언어의 분절음과 음절구조의 차이, 모국어 영향에 따른 종성 비음의 길이 차이, 억양구경계에서의 장음화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VarcoV 또한 일본인학습자의 VacocV가 한국화자보다 낮게 나타남으로써 모국어의 간섭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음절길이의 변화정도를 나타내는 VarcoS의 경우 한국어 비음 종성이 포함된 VC, CVC 음절 길이의 증가율이 한국화자들보다 높게 나타나 일본인학습자들이 한국어의 비음 종성을 하나의 모라로 인식하여 VC나 CVC 음절을 두 모라로 발음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본 연구는 일본인학습자들의 한국어 발음을 특징짓는 모국어 리듬체계의 간섭현상을 살핌으로 일본인 한국어학습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한국어 리듬구조의 특징을 부분적으로나마 조사한 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는 제한된 연구 자료와 피험자를 대상으로 하였고 리듬연구를 위해 완벽히 통제된 자료를 사용하지 못했으며 보다 다양한 분석방법들이 적용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는 후속 연구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며 이와 더불어 연구 결과를 한국어 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