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고유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으며 각자의 목소리 음역대 안에서 각기 다른 음도(pitch)를 가진다(Chen, 2005; Dolson, 1994; Eady, 1982). 이러한 음도는 1초 동안의 성대(vocal cords)가 진동하는 횟수인 기본주파수(fundamental frequency, F0)로 표현한다. 기본주파수는 해부-생리학적 변화에 의하여 성대의 길이, 크기, 긴장에 따라 달라진다. 성대의 길이가 짧고 크기가 작을수록, 긴장도가 높을수록 기본주파수가 높아지는데(Fucci & Lass, 1999; Ohala, 1984; Laver, 1980), 성별 및 연령에 따른 기본주파수의 차이는 주로 성대의 크기와 길이의 차이로 설명된다. 보통 사춘기 이전에는 남녀 간 기본주파수의 차이는 보이지 않다가 사춘기 이후부터 남성의 후두가 커지고, 성대는 길고 굵어지면서 여성보다 기본주파수가 낮아지게 된다. 그러나 점차 중·장년기에 접어들면서 남성은 일반적으로 성대가 가늘어지며 기본주파수가 증가하고, 여성 또한 호르몬의 변화로 성대는 더욱 무거워져 기본주파수는 감소한다(Hollien & Shipp, 1972; Morrison & Gore-Hickman, 1986; Mysak, 1959).
연령과 더불어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기본주파수가 달라지기도 한다(Mennen et al., 2012; Traunmüller & Eriksson, 1995; Van Bezooijen, 1995). 특히, 이중언어 화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한 화자 안에서도 언어에 따라 기본주파수가 변화한다는 결과가 학계에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Graham, 2014). Hanley et al.(1966)의 연구에 의하면 스페인어, 일본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남성 화자들을 대상으로 각각의 언어로 된 읽기 자료와 발화 표본을 분석하여 동일한 화자의 기본주파수가 언어에 따라 달라지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 순으로 기본주파수 범위가 더 컸다고 보고하였다. 또한 Andreeva et al.(2014)은 영어 및 독일어 화자를 게르만어군(Germanic group)으로 묶고, 불가리아어, 폴란드어 화자를 슬라브어군(Slavic group)으로 나누어 두 집단 간 기본주파수 차이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게르만어군 화자의 기본주파수가 슬라브어군 화자들의 기본주파수 평균보다 낮았으며 기본주파수의 범위도 슬라브어군이 게르만어군보다 더 컸다고 하였다. 그리고 Yuan(2014) 연구에서는 미국 영어(American English) 화자와 만다린어(Mandarin Chinese) 화자의 실제 뉴스 말뭉치 자료를 분석하여 두 언어 간 기본주파수 범위의 차이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만다린어 화자의 기본주파수 평균이 영어 화자보다 높았으며 주파수 범위 격차는 만다린어 화자가 영어 화자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Ryabov et al.(2016)에서 영어-러시아어 이중언어 화자를 대상으로 연결 발화를 분석한 결과, 언어의 능숙도 및 거주년수, 이민 시기 등이 각기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언어 간 평균 기본주파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또한 Nevo et al.(2015)의 연구에서도 영어-히브리어를 모두 능숙하게 사용하는 이중언어 화자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 히브리어보다 영어의 평균기본주파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같은 화자더라도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자신의 음도를 조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주파수는 언어에 따라 다르다는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Chen, 2005; Dolson, 1994; Eady, 1982; Keating & Kuo, 2012), 이를 규명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었다. 첫 번째는, 해부생리학적 차이(Künzel, 1989; Van Dommelen & Moxness, 1995)가 언어 간 기본주파수 차이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으로 해당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간의 해부생리학적 차이로 인해 주파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이중언어 화자의 언어 간 기본주파수 변화를 살펴본다면 해부생리학적 요인으로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 번째로, 행태학적(ethological)인 요인에 의해서 달라진다는 주장인데, Ohala(1984)는 기본주파수는 내재된 특정한 주파수 코드를 참조하며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고유하게 저장된 생물학적인 코드는 후두 크기와 성대 진동의 비율 사이의 상관관계를 기반으로 하므로 작은 후두가 큰 후두보다 높은 기본주파수를 생성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높은 주파수는 작은 화자(small vocalizer)를 의미하며, 그들의 음성을 순종적이고 취약한 것으로 연결하고, 낮은 주파수는 큰 화자(large vocalizer)를 의미하여 그들의 음성을 우세하고 위협적인 것으로 연결시켰다. 이러한 상관관계는 일반적으로 구어에서 권력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이용된다고 하며, 만일 기본주파수가 그러한 행태학적인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면 이러한 요소들이 두 언어에서 유사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째로, 언어마다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음운론적 특성이 주파수범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있다(Mennen et al., 2012; Yamazawa & Hollien, 1992). 예를 들어, 유성자음은 같은 유성자음 뒤에 연속할 때보다 무성 자음 뒤에 위치할 때 더 높은 기본주파수 값을 보인다고 하는데 (Gussenhoven, 2004), 이러한 특성들이 언어마다 다르기 때문에 기본주파수에서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당 언어권의 사회문화적인 차이가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언어적 배경과 관련된 언어 외적인 요인에 따라 일부는 언어 간 주파수 범위를 변화시킬 것이고 다른 일부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주장으로 사회문화적 요인에 따라 기본주파수의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였다(Deutsch et al., 2009; Dolson, 1994; Van Bezooijen, 1995).
주목할 만한 것은 이중언어 화자를 대상으로 하는 많은 연구에서 성별과 언어에 따른 기본주파수 차이를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해석한다는 것이다(Ohara, 1999; Ordin & Mennen, 2017; Voigt et al., 2016). 예를 들어, Ohara(1999)는 영어-일본어 이중언어 화자의 기본주파수 범위를 연구한 결과, 여성의 일본어-영어 사용에 있어서 기본주파수 범위에 유의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여성에서만 나타난 이유를 언어의 운율적 특징 차이보다는 사회 문화적인 영향과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Ordin & Mennen(2017)도 영어-웨일즈어 이중언어 화자의 말을 분석한 결과 여성의 경우에만 기본주파수 범위 차이가 있었다는 결과를 보고한 바, 이는 언어 배경과 언어 공동체의 사회 문화적 요인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Ordin & Mennen(2017)은 여성의 경우에서만 변화가 나타난 것을 두고, 남성과 여성이 추구하는 바의 차이로 설명하고 있다. 즉, 남성의 경우 그들 본인의 개성을 중시하는데 비해 여성은 사회 규범과 본인의 인격을 적절하게 균형을 맞춰나가려는 경향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에는 남성에게는 더 경쟁적이고 독립적인 인격을 요구하고 여성에게는 더 협력하도록 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Barrett et al., 1993; Bussey & Bandura, 1999; Eagly, 1978; Huston, 1983). 이처럼 이중언어 화자를 대상으로 한 최근의 연구들은 언어 간 기본주파수 변화의 원인에 대해 사회문화적인 요소를 중요하게 지적한다. 언어는 화자가 속한 문화와 경험으로 얻은 개인의 정체성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사회적 배경이 목소리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한 해석인 것이다(Briley et al., 2005; Danziger & Ward, 2010; Ellis et al., 2015; Ogunnaike et al., 2010; Ordin & Mennen, 2017).
이에 두 언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 화자를 대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기본주파수와 같은 음향학적 지표 변화를 살펴보는 것은 음도변화의 기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기본주파수 변화가 화자의 해부 생리적 차이나 행태학적 차이에 기인한다면 이중언어 화자가 두 언어를 사용할 때 기본주파수의 변화는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사용하는 언어의 특성에 따라 기본주파수가 변화한다면, 이중언어 화자의 사용언어에 따라 기본주파수가 변화할 것이다. 또한, 사회문화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문화적 배경이 다른 집단마다 기본주파수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선행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언어(Chen, 2005; Deutsch et al., 2009)와 사회적 집단(Awan & Mueller, 1996; Dolson, 1994; Graddol & Swann, 1983; Van Bezooijen, 1995)이 기본주파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인으로 하여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화자를 대상으로 기본주파수가 성별, 사용언어, 사회적 집단에 따라 달라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사회적 집단을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나누었으나 본 연구에서는 성별 및 문화권을 경험한 기간인 거주년수와 경험을 통해 습득한 언어의 능숙도에 초점을 두고 분류하였다. 음도변화는 사회문화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가정하였을 때, 사회문화적 특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성에게서 사용언어에 따른 기본주파수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다시 말해, 여성은 영어-한국어 발화에서 기본주파수 범위에 차이를 보이지만, 남성의 경우에는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또한 기본주파수는 성별과 언어에 이어 과제조건에 따라서도 변할 수 있다(Hollien et al., 1997; Shrivastav et al., 2000; Zraick et al., 2000). Murry et al.(1995)은 연장발성 및 읽기, 즉흥적인 자발화 조건에 따른 평균 기본주파수를 조사한 결과, 남성 화자는 읽기 상황이나 자발화 상황에서의 기본주파수가 연장발성에서 보다 유의하게 높았으며 여성의 경우에는 연장발성이 더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하였다. Zraick et al.(2000)의 연구에서는 연장발성, 읽기, 숫자세기 등 다양한 과제를 통해 평균 기본주파수를 측정하였을 때, 아동 및 성인 남성의 평균 기본주파수는 과제 간 유의한 차이가 없었으나 여성에게서는 유의한 차이가 나타났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이중언어 화자의 음도 변화에 대해 살펴본 기존 연구들은 읽기 상황에서의 목소리 변화를 살펴본 것이 대부분이다(Lim et al., 2016; Ordin & Mennen, 2017).
언어적 능숙도 또한 기본주파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Busà & Urbani(2011)의 연구에서는 이탈리아어 화자에게 영어로 질문에 답하도록 한 결과, 영어가 모국어인 집단의 발화에 비해 이중언어 화자의 기본주파수 범위가 더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Zimmerer et al.(2014)은 프랑스어, 독일어가 모국어인 화자들은 모국어인 L1(First language, 또는 Mother tongue)의 발화보다 두 번째 언어인 L2(Second language)의 발화에서 더 작은 기본주파수 범위를 보였다고 보고하였는데, 이는 발화 시 그들이 초분절적인 특징보다는 단어의 분절화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과 더불어 L1에 비해 L2를 사용할 때 자신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L2를 얼마나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도 차이가 따라서 언어의 능숙도가 음향적인 지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중언어 화자의 각 언어별 노출기간에 따른 언어 간 기본주파수 변화의 양상을 확인한 연구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중언어 화자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언어별 능숙도에 따라 다양한 상황에서 기본주파수가 변화하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특히,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화자를 대상으로 읽기 상황뿐 아니라, 일상적인 질문에 답하는 자발화 상황에서도 읽기상황과 마찬가지로 평균 기본주파수가 달라지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앞선 선행연구에서 보고한 바와 같이 과제 유형에 따라 화자의 기본주파수가 달라진다면(Hollien et al., 1997; Murry et al., 1995; Zraick et al., 2000) 기본주파수는 읽기 상황과 자발화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만약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이중언어 화자들의 기본주파수 범위가 변화한다면 각 언어를 사용한 기간과 언어의 능숙도에 따라서도 기본주파수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중언어 화자의 언어 능숙도 및 노출기간에 따라 집단을 나누어 두 언어 간 기본주파수의 차이를 비교한다면 두 언어에 대한 능숙도가 높을수록 기본주파수 범위의 변화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본 연구의 연구 질문은 다음과 같다.
2. 본론
본 실험은 연구 질문에 따라 두 가지 실험단계로 나누어서진행하였다. 먼저 첫 번째 연구 질문을 검증하기 위한 대상자는 영어를 L1으로 사용하는 국가에서 7년 이상 거주한 경험이 있는 균형적 이중언어 집단으로 20-30대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화자 28명(남 14명, 여 14명)으로 하였다. 이들은 한국어와 영어에 모두 능숙한 사람이었다.
또한, 두 번째 연구 질문에 따라 균형적 이중언어 집단의 대상자와 언어 노출기간 및 능숙도에 차이를 두고 비교하고자 20-30대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화자 20명(남 10명, 여 10명)을 추가로 모집하였으며(한국어 우세 이중언어 집단), 본 대상자들은 영어를 L1으로 사용하는 국가에서 6개월 이상, 3년 미만으로 거주한 경험이 있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중언어 화자로 선정하였다.
이후 전체 대상자에게 자기보고식 설문지 Leap-Q(Marian et al., 2007)를 작성하여 각 언어별 능숙도를 보고하게 하였다. 각 대상자 집단의 평균 나이 및 각 언어권 국가에서의 거주년수 및 언어 능숙도 점수는 표 1에 제시하였다.
* LEAP-Q (Marian et al, 2007).
균형적 이중언어 집단과 한국어 우세 이중언어 집단 간 거주년수 및 언어 능숙도, 연령, 교육년수에 유의한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독립표본 t-검정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집단 간 한국어권(t46=-7.410, p=.001) 및 영어권 거주년수(t46=10.913, p=.000)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었다. 즉, 균형적 이중언어 집단(M=11.78(yrs), SD=4.24)이 한국어 우세 이중언어 집단(M=1.26(yrs), SD=.89)보다 영어권 국가에서 더 오래 거주하였다. 또한, 영어 이해(t46=5.167, p=.001) 및 읽기(t46=4.905, p=.001), 표현(t46=5.480, p=.010) 능력에서 각각 유의한 차이를 나타내 두 집단 간 영어 능숙도에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 즉, 균형적 이중언어 집단(M=9.00, SD=.86)은 한국어 우세 이중언어 집단(M=6.750, SD=2.07)보다 영어 이해에서 높은 능숙도를 보이고, 읽기에서도 균형적 이중언어 집단(M=8.89, SD=.79)이 한국어 우세 이중언어 집단(M=6.75, SD=2.12)보다 높은 능숙도를 보였으며, 표현에서도 균형적 이중언어 집단(M=8.68, SD=1.22)이 한국어 우세 이중언어 집단(M=5.95, SD=2.21)의 것보다 높았다. 반면, 연령 및 교육년수는 두 집단 간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본 연구에서는 읽기 상황과 자발화 상황에서의 평균 기본주파수를 측정하였다. 본 연구에서 사용한 읽기 과제는 길이와 난이도가 비슷하며, 중립적인 내용으로 구성된 글을 인터넷 뉴스를 통해 수집하였고, 과제의 타당도를 검증하기 위해 내용타당도를 분석하였다. 내용타당도를 살펴보기 위해 한국어와 영어가 모두 유창하다고 보고한 3인의 이중언어 화자에게 4점 척도의 설문지를 배포 및 회수하여 분석하였다. 내용타당도는 설문지를 통하여 검사문항을 4점 척도(0점=전혀 비슷하지 않다, 1점=비슷하지 않다, 2점=비슷하다, 3점=매우 비슷하다)에 따라 내용의 적절성을 평가하여 단어 수준, 구문 수준, 전체적인 내용 수준의 평균값을 산출하여 검증하였다. 그 결과, 과제의 내용타당도는 77.8%로 나타났다. 자발화 과제는 일상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진행되었으며 한국어와 영어의 질문은 내용이 동일한 질문으로 구성하였다. 읽기 과제의 지문과 자발화 과제의 질문은 부록 1에 제시하였다.
본 연구에서의 대상자는 언어 경험과 능숙도에 대한 조사서(LEAP-Q; Marian et al., 2007)를 작성한 뒤 실험에 참여하였다. 모든 실험은 소음이 없는 실험실 내부에서 진행하였다. 모두 동일한 마이크를 사용하여 대상자의 음성을 수집하였으며 대상자와 마이크의 간격은 15 cm로 통제하였다. 실험은 연구자가 제시하는 지문을 읽는 과제와 일상적인 질문에 대해 답하는 자발화 과제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모든 과제는 한국어와 영어로 각각 한 번씩 진행되었으며, 제시 순서는 한국어-영어 순이었다. 읽기 지문은 모두 유인물의 형태로 실험 시작 시 제공하였으며 자발화 과제는 사전에 미리 질문의 내용을 제공하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발화 과제의 질문은 매 실험마다 각각 영어 및 한국어로 구성된 두 가지 질문 중 임의로 선정하였다. 자발화 과제 시 자연스러운 대화 상황처럼 설정하기 위해 실험 전에 미리 연구자와 대상자 간에 라포를 형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연구자는 대상자 맞은편에 앉아 눈을 마주치고 답변에 호응하는 등 대상자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유도하였다. 언어 능숙도에 대한 조사서 작성 시간을 제외하고, 대상자별 평균 실험 소요시간은 10~15분이었다.
실험 대상자의 음성은 소음이 없는 실험실 내부에서 수집하였으며 대상자의 입과 15 cm 떨어진 위치에 마이크(CMP-G7 USB COBRA, China)를 고정하여 녹음하였다. 녹음의 샘플링 속도는 44,100 Hz로 설정하였으며 양자화는 16 bit로 하였다. 녹음된 음성에서 기본주파수를 살펴보기 위해 Praat(Boersma & Weenink, 2001)을 사용하였으며 스펙트로그램 상에서 발화샘플의 f0를 추출하였다. 읽기 과제의 평균 기본주파수는 대상자가 한국어 및 영어 지문을 읽는 동안의 f0 평균값을 추출하였다. 이때 안정적인 발화의 f0 값을 분석하기 위해 문단의 앞 뒤 한 문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f0 평균값을 분석하였다. 자발화 과제의 평균 기본주파수는 과제 수행 시 대상자들에게 질문에 1분 이상 자연스럽게 답할 것을 요청하여 그 중 가장 안정적인 구간 30초의 f0 평균값을 추출하였다. 발화 내 3초(3,000 ms) 이상의 쉼이나 머뭇거림이 있을 시에는 해당 부분을 제외하여 분석하였다. 그림 1은 자발화 상황에서의 스펙트로그램 분석 화면 예시이다.
이후 각 성별 내 언어 × 과제 이원 배치분산 분석(two-way repeated ANOVA) 및 집단 × 언어 이원 혼합 분산 분석(two-way mixed ANOVA)을 실시하였다. 모든 통계분석은 SPSS(version 25.0) for windows를 사용하여 분석하였다.
3. 연구 결과
균형적 이중언어 집단의 한국어-영어의 읽기 및 자발화 과제 수행은 표 2에 제시하였다. 성별 간 기본주파수는 다르기 때문에 과제 및 언어의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각 성별 내에서 한국어-영어 간 과제에 따라 평균 기본주파수에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여성의 경우 언어(F(1,13)=13.804, p=.003) 및 과제(F(1,13)=7.011, p=.020)에 대한 주효과가 모두 유의하였다(그림 2). 즉, 영어(M=199.07(Hz), SD=17.97)보다 한국어 과제(M= 206.95(Hz), SD= 17.50)의 평균 기본주파수가 더 높았으며, 자발화 과제(M=139.98(Hz), SD=19.76)보다 읽기 과제(M=206.19(Hz), SD=15.80)에서 기본주파수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았다. 그러나 언어와 과제 간 상호작용은 유의하지 않았다(F(1,13)=.104, p=.753). 반면, 남성의 경우 언어(F(1,13)=.960, p=.345) 및 과제(F(1,13)=3.339, p=.091)에 대한 주효과와 언어 × 과제 간 상호작용(F(1,13)=.341, p=.569)이 통계적으로 모두 유의하지 않았다(그림 3).
읽기 과제에서 언어 능숙도에 따라 집단 간(균형적 이중언어 집단, 한국어 우세 이중언어 집단) 평균 기본주파수에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읽기 과제에서의 언어 × 집단 간 이원혼합 분산분석을 실시하였다. 첫 번째 연구 질문에 대한 결과로 언어 간 음도변화양상이 과제에 상관없이 일정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본 실험에서는 자발화 과제는 실시하지 않고 읽기 과제에서의 집단 간 기본주파수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여성 대상자들의 언어에 대한 주효과(F(1,22)=36.886, p=.000)가 유의하였다(그림 4). 즉, 한국어 읽기 과제에서 평균 기본주파수(M=201.892(Hz), SD=15.53)가 영어 읽기 과제(M= 202.713(Hz), SD=16.70)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그러나 집단에 대한 주효과는 유의하지 않아(F(1,22)=.047, p=.830) 언어 능숙도에 따른 평균 기본주파수의 변화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언어 × 집단 간 상호작용은 유의하지 않았다(F(1,22)=.598, p=.448). 반면 남성의 경우, 읽기 과제에서의 언어(F(1,22)=3.868, p=.062) 및 집단(F(1,22)= .966, p=.336)의 주효과가 모두 유의하지 않았으며, 상호작용 또한 유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F(1,22)=1.977, p=.174). 각 집단 간 읽기 과제의 평균 기본주파수는 표 3에 제시하였다.
4. 논의 및 결론
본 연구에서는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화자가 각각의 언어를 사용할 때, 각 성별 내 언어 및 과제에 따라 평균 기본주파수에서 차이를 보이는지 알아보고자 하였으며, 언어의 능숙도에 따라 읽기 과제에서 언어 간 평균 기본주파수의 변화양상이 달라지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 여성은 읽기 및 자발화 과제에서 모두 영어보다 한국어에서의 평균 기본주파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 반면, 남성의 경우에는 두 언어 간 통계적으로 유의한 기본주파수변화를 나타내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여성 이중언어 화자는 영어와 한국어를 말할 때에 언어 간 음도가 변화하였고, 남성은 음도변화를 보이지 않아 성별에 따라 기본주파수의 변화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이중언어 화자들의 언어 간 기본주파수 변화양상이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선행연구와도 일치하는 결과이다(Ordin & Mennen 2017; Voigt et al., 2016). 이러한 각 성별 내 기본주파수 변화 양상에서 차이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음운론적 기본 특성이나 해부-생리학적인 차이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문화적인 요소가 영향을 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만약, 해부-생리학적인 차이나 언어학적 특성 등이 반영되었다면 언어에 따른 기본주파수변화가 남녀 모두에게 나타났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 이중언어 화자는 자발화 과제보다 읽기 과제에서 더 높은 평균 기본주파수를 보였지만 남성의 경우에는 과제 간 유의한 변화를 나타내지 않았다. 즉, 여성은 언어 간에도 기본주파수 변화를 보이는 동시에 읽기 및 자발화 과제에 따라서도 평균 기본주파수가 변화한 반면, 남성의 경우에는 언어 및 과제 유형에 상관없이 비슷한 음도를 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Zraick et al.(2000)의 연구에서도 여성의 경우에만 과제 유형에 따른 주파수 변화가 있었다고 보고한 것처럼, 과제 자체의 특성보다는 상황에 맞게 목소리를 유연하게 변화시키는 여성의 성향 등이 과제 간 주파수 변화에 기여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기존연구에서는 모국어에서 과제 유형(읽기, 자발화)별 기본주파수 변화를 살펴본 반면, 본 연구에서는 이중언어 화자의 모든 언어에서 과제유형별 음도 차이가 발생하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언어 및 과제유형(읽기, 자발화) 모두 기본주파수를 변화시키는 요인이며 특히 이는 여성에게 민감하게 작용하는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음향학적 차이를 만드는 요인이 해부생리학적인 요인과 언어적 특징에 기인한 결과가 아닌 사회문화적 요소에 대한 민감성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에서는 한국어 및 영어의 능숙도가 이러한 기본주파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언어의 능숙도가 주파수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앞선 결과와 마찬가지로 여성 대상자들은 능숙도에 상관없이 한국어-영어 간 유의한 기본주파수 변화를 보였다. 남성의 경우에는 언어 간 약간의 기본주파수 변화를 보이기는 하였으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첫 번째 연구 질문에 대한 해석으로 제시했던 사회문화적 영향은 언어적 능숙도에 상관없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본 연구에서의 제한점은 다음과 같다. 언어 노출 정도를 거주년도로 한정했으며 언어별 능숙도 또한 자기보고식 평가로 직접평가가 아닌 간접평가를 통해 측정하였다. 그리고 본 연구를 일반화하기에는 다소 대상자 수가 적다는 한계점이 있다. 이에 후속연구에서는 대상자수를 더 확보하고 사회문화적 요인을 세분화하여 기본주파수 변화와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