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말소리에는 분절음적(segmental) 정보와 함께 운율적(prosodic) 정보도 함께 포함되어 전달된다. 따라서 복합적인 정보로 구성된 말소리 문장을 이해할 때 어떤 정보가 우선 작용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연속된 발화에 포함된 음운단어(phonological word) 재인 시 운율정보와 어휘정보 사이의 상호작용 양상을 살펴보는 것이다.
문어와 구어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문어는 띄어쓰기가 단어와 단어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지만, 구어는 단어와 단어의 경계가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선행연구를 통해 사람이 말소리에서 단어와 단어의 경계를 찾도록 돕는 단서로 말소리의 운율정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Christophe et al., 2004; Cutler & Norris, 1988; Gout et al., 2004; Jusczyk et al., 1999; Nazzi et al., 2006). Christophe et al.(2004)은 프랑스어 화자가 음운구(phonological phrase)의 경계에 따라 단어를 분절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어 화자들의 경우, 음운구 경계와 단어 경계가 일치할 때(예, [son grand chat] [grimpait]의 ‘chat’과 ‘grim’)가 음운구 경계와 단어 경계가 일치하지 않을 때(예, [un chat grincheus]의 ‘chat’과 ‘grin’)보다 단어를 쉽게 분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어 말소리 처리에도 음운구의 경계는 중요한 단위로 알려져 있다(Shin, 2011). 한국어를 대상으로 연구한 Kim & Cho(2009)는 음운구 경계의 마지막 음절이 갖는 성조와 다음 음운구 경계의 첫 번째 음절의 성조가 두 음운구의 경계를 찾고 단어를 분절하는 데에 이용된다고 주장하였다. Choi et al.(2011) 역시 음운구 경계가 한국어 음운단어 탐색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함을 한국인 화자를 통한 실험으로 밝혀냈다. Choi et al.(2011)의 단어찾기과제(Word-Monitoring Task)에서는 ‘[방수 비늘로] [만든] [가방이다].’1에서 ‘수비’를 찾아내는 시간이 ‘[사방에서] [예찬이] [쏟아졌다].’에서 ‘서예’를 찾아내는 시간보다 유의미하게 빠른 것을 확인하였다. 한편, 음절찾기과제에서는 ‘[방수 비늘로] [만든] [가방이다].’에서 ‘비’를 찾는 시간이 ‘[사방에서] [예찬이] [쏟아졌다].’에서 ‘예’를 찾는 시간보다 느리게 나타난 것을 확인하였다. 이 결과를 통해 음운구 경계의 존재가 목표단어를 찾는 데에는 방해효과를, 음절을 탐지하는 데에는 촉진효과를 일으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선행연구 검토를 통해 음운구 경계가 발화에서 단어를 분절하고 음운단어를 재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어는 음운구 형성 여부에 따라 음높이 변화 양상이 달라지는 특징을 갖는다(Shin, 2011). 즉, 두 개의 음운단어가 두 개의 음운구로 실현될 땐 첫 음운단어의 마지막 음절과 두 번째 음운단어의 첫 번째 음절의 음높이 차이가 크지만, 하나의 음운구로 실현될 때 두 음절의 음높이가 완만하게 연속적으로 떨어지는 특징을 갖는다. 결국, 소리지각 단계에 물리적 특성이 있는 음운구 경계가 청각 단어재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문장 자극을 사용한 뇌파 연구(Männel &Friederici, 2009)와 음악을 사용한 뇌파 연구(Nan et al., 2009)에서 목표자극 제시 이후 200 ms 시간대의 P2 컴포넌트가 운율 경계에 민감하다는 결과 또한 운율 단위에 속하는 음운구 경계가 청각 단어재인의 초기의 물리적 특성과 연관이 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출현 빈도가 높은 단어가 낮은 단어에 비해 처리 속도가 빠르다는 빈도효과(frequency effect)의 확인은 언어심리학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단어 검출기 모델들(word detector models)로 알려진 로고젠 모델(Morton, 1969), 상호 작용적 활성화 모델(interactive activation model; McClelland & Rumelhart, 1981)이나 연속 검색 모델(serial search model; Rubenstein et al., 1970; Foster, 1976) 그리고 활성/검증 모델(activation/verification model; Schvaneveldt & McDonald, 1981)에서 고빈도 단어의 재인이 저빈도 단어의 재인보다 빠른 이유를 탐색기의 역치(threshold)나 기본 활성화 값(activation strength)의 차이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Monsell, 2012 참고).
대표적인 어휘 변인인 빈도는 어휘접속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어휘접속 전의 단어재인 초기처리단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있다. 시각 단어재인 연구에서 어휘 변인들의 처리 시간대를 알아본 Hauk et al.(2006)은 빈도효과가 110 ms 시간대에 나타난다고 보고함으로써, 빈도가 시각단어 처리에서 매우 이른 시간대에 처리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정보가 병렬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시각단어재인의 경우에는 단어의 빈도가 초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시각단어와는 달리 청각단어는 순차적으로 정보가 입력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시각단어의 정보처리와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후기 TRACE 모델(McClelland & Elman, 1986)은 말소리의 순차적인 활성화 처리과정이 음향적 자극(phenetic features), 음소(phonemes) 그리고 단어의 순서를 거친다고 설명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청각단어재인 시 어휘변인과 관련이 깊은 단어빈도가 재인의 초기단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다고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Dahan et al.(2001)은 고빈도 단어와 저빈도 단어에 해당하는 그림을 주시하는 시간을 측정한 안구운동 연구를 통해 고빈도 단어에 해당하는 그림에 시선을 두는 시간(fixation latency)이 저빈도 단어에 해당하는 그림에 시선을 두는 시간보다 더 길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빈도효과가 단어재인의 초기처리단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주장하였다2.
이러한 맥락에서 단어재인 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빈도효과와 한국어의 음성언어 처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음운구 경계 효과 사이의 상호작용을 조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실험을 통해 한국어의 음성언어 처리 과정에서 보이는 운율 단위 구성 정보와 어휘 정보의 상대적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음운구 경계는 물리적인 특성에 기반하는 반면에 빈도효과는 어휘적 특성에 기반하므로, 물리적 특성에 기반하는 경계 정보가 청각단어재인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단어찾기과제(word monitoring task)(Christophe et al., 2004; Cutler & Foss, 1977; Ralston et al., 1991; Shields et al., 1974; Tyler, 1989; Tyler & Warren, 1987)를 음운구 경계 유무 환경과 고빈도와 저빈도 환경에서 수행하게 함으로써 각 환경에서 한국어 모국어 화자들이 보이는 반응시간 차이를 비교하였다. 음성언어 처리 과제에서 생기는 특성을 고려하여 관련 변수를 철저히 통제하고자 노력하였다.
2. 연구방법
대학교 학부 혹은 대학원에 재학 중인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청력에 이상이 없으며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성인 남녀 58명이 실험에 참여하였다. 29명(남 14명, 여 15명)은 음운구 경계 내(이하 경계 내) 집단에 할당되었고, 나머지 29명(남 13명, 여 16명)은 음운구 경계 간(이하 경계 간) 집단에 할당되었다.
실험에 사용된 문장은 총 90개로 그중 60개의 문장이 목표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실험 자극과 통제자극으로 사용되었고, 나머지 30개의 문장이 목표단어를 포함하지 않은 방해자극으로 사용되었다. 단어탐지과제에서 문장을 듣는 동안 60개의 목표단어를 포함한 문장에는 목표단어를 찾아 ‘있다’라고 반응해야 했으며, 30개의 방해자극 문장에는 ‘없다’라고 반응해야 했다.
60개의 목표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문장 중 40개의 실험자극은 국지적 어휘 중의성3이 발생하는 조건으로 각각 20개씩의 고빈도와 저빈도 목표단어 자극으로 구성되었으며, 각각 목표단어의 위치가 음운구 경계에 걸치게 녹음된 문장을 음운구 경계 간 조건, 걸치지 않게 녹음된 문장을 음운구 경계 간 조건으로 배정하여 참가자간 변인으로 사용하였다. 20개의 통제자극은 국지적 어휘 중의성이 없는 자극으로 실험자극이 가지는 음운구 경계 방해효과를 비교하기 위해 구성되었다.
실험 자극에 사용된 목표단어는 세종 현대문어 형태분석 말뭉치 1,500만 어절에서 선정된 외래어를 제외한 고유어, 한자어 2음절 명사이다. 고빈도 단어는 26 mil 이상, 저빈도 단어는 9 mil 미만인 것 중 선정하였다. 목표단어4는 시각 정보로 주어지고, 목표단어가 들어간 문장은 청각 정보로 주어지는 실험인 만큼, 목표단어는 철자와 발음이 항상 일치하는 것으로만 선정하였다. 한국어는 음운구 내에서 장애음과 평 장애음의 연쇄, 장애음과 /ㅎ/의 연쇄를 허용하지 않아 경음화, 격음화 등의 음운 현상이 일어난다. 또한, 수의적으로 후행하는 소리에 선행하는 소리가 동화되는 조음 위치 동화현상이 일어난다. 따라서 예를 들어, 격음화가 일어나는 ‘약효’, 조음 위치 동화가 일어나는 ‘선배’는 목표단어로 선정하지 않았다.
이렇게 선정된 목표단어를 이용하여 자극 문장을 생성하였는데, 자극 문장은 음운구 경계를 넣어 발화한 것을 기준으로, 4개의 음운구로 산출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음운구 경계를 넣지 않아도 자연스럽도록 생성하였다. 말소리 과제에서 생기는 특성을 자세히 통제하고자 노력하였는데, 먼저 목표단어 선정 시와 동일하게, 외래어는 제외하였다. 목표단어의 앞 뒤 음절에서도 음운 변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 음운동화 효과를 통제하였다. 목표단어의 위치에 대한 변인도 통제하기 위해, 목표단어는 목표단어의 각 음절 사이에 음운구 경계가 있는 발화를 기준으로 4개의 음운구 위치에 골고루 들어가도록 했다. 한국어 표준어에서 음운구의 두 번째 음절과 마지막 음절은 전형적으로 고성조로 실현된다(Shin, 2011). 고성조 음절은 저성조 음절보다 청각적으로 두드러지므로, 목표단어를 확인할 때 목표단어의 첫음절의 성조가 조건별로 다를 시, 참가자의 반응시간에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본 실험은 목표단어의 첫 번째 음절은 각각의 음운구 경계 간 조건과 음운구 경계 내 조건의 음운구 내 두 번째 음절에 위치하도록 조작하여 조건 간의 성조가 모두 고성조로 실현되도록 하였다(표 1. 예시 참고). 마지막으로 목표단어의 각 음절은 어휘형태소의 일부가 되도록 하였다. Bell et al.(2009)에 따르면 단어 빈도가 내용어(content word)에만 영향을 미치며 기능어(function word)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극으로 생성된 문장은 한국어 교육학 전공 석사 과정생 20대 여성 표준어 화자가 소음이 통제된 환경에서 녹음하였다. 44,100 Hz의 표본추출률에 모노 타입으로 녹음하였으며, 16 bit로 양자화하였다. 모든 문장 내에는 억양구 경계가 없도록 녹음하였다. 녹음된 문장은 국어 음성학 전공의 박사 수료생 2명과 박사 과정생 1명, 총 3명의 전문가의 평정을 받았다. 평정 항목은 목표단어 내의 음운구 경계 및 억양구 경계 존재 여부와 문장의 전체적인 운율이 자연스러운지의 3가지였고, 2회에 걸쳐 평정을 받은 후, 2명 이상이 문제없는 자극이라고 판단한 것만을 사용하였다. 평정을 마친 녹음은 Praat 6.0.40의 modify 기능으로 평균 강도(average intensity)가 70 dB SPL이 되도록 조정하였다.
실험은 2×2 혼합 설계(mixed design)로 구성되었다. 집단 내 변인은 목표단어의 빈도로, 고빈도와 저빈도 조건을 설정하였다. 집단 간 변인은 경계 종류로, 목표단어가 속한 어절들이 1개의 음운구로 발화된 음운구 경계 내 그리고 목표단어가 속한 어절들이 2개의 음운구로 발화된 음운구 경계 간 조건을 설정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문장 내의 다양한 위치에 목표단어가 등장하기 때문에, 실험참가자의 정확한 반응시간을 측정하기 위해서 문장 내의 목표단어 첫 음절의 시작 시간을 측정하는 작업이 필요하였다. 목표단어 첫 음절의 시작 시간 측정은 Lee et al.(2003)의 레이블링 기준안을 참고하여 본 연구에 맞게 몇 가지 기준을 세우고 실시하였다.
목표단어 첫 음절의 시작점 측정은 청지각적 판단을 우선으로 하고, 스펙트로그램(spectrogram)을 통해 선행 음절의 끝점을 확인한 후, 목표하는 음절의 시작점을 표시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청지각적 판단이 어려운 경우, 몇 가지 기준을 통해서 측정이 일관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통제하였다. 먼저, 모음의 분절은 선행 음소가 자음인 경우는 모음의 포만트(formant)가 시작되는 부분을 모음의 시작점으로 하였고, 선행 음소가 모음인 경우는 포만트 전이의 중간을 모음의 시작점으로 하였다.
자음의 경우 청지각적 판단만으로 측정이 어려운 것들이 있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선정한 후 일관되게 측정하였다. 먼저, 폐쇄 구간을 포함하는 폐쇄음과 파찰음은 어두에 나타날 경우 폐쇄 구간을 측정하는 것이 어려운데, 본 연구에서는 어두 폐쇄음, 파찰음의 파열 신호가 처음 나타나는 지점의 30 ms 앞을 해당 음절의 시작시간으로 하였다. 또한, 두 비음이 연속으로 나타나는 경우, 스펙트로그램 상에서 확실한 구분이 보이면 그 점을 기준으로 나누었고,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전체 비음 구간을 반으로 나누어 음절의 시작을 측정하였다.
실험의 통계분석엔 2×2 혼합 설계 반복측정 분산분석(mixed-repeated ANOVA)를 실시하였다. 독립변인으로는 빈도 2수준과(고 vs. 저) 음운구 경계 2수준이(경계 내 vs. 경계 간) 사용되었고, 종속 변인으로는 각 실험 조건에 대한 반응시간에서 통제 조건에 대한 반응시간을 뺀 경계 방해 효과 값(표 1의 방해 효과 값 참고)이 사용되었다. 상호작용을 해석하기 위해 사후검증도 시행하였다.
모든 실험참가자들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인지지각실험실에 마련된 방음실에서 동일한 조건 하에 단어탐지과제를 수행하였다. PsychoPy 1.90.2를 이용하여 지각 실험을 구성하였고, 실험에 사용된 헤드폰은 SHURE사의 SRH440이었다. 실험 전에는 실험에 대한 간단한 설명 후, 실험 동의서를 작성하도록 하였다.
실험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중앙에 + 표시로 응시점을 제시하고, 목표단어가 중앙에 2초 동안 제시된다. 실험 문장이 제시되기 전 추가로 빈 화면이 0.5초 동안 제시된 후 실험참가자가 헤드폰을 통해 실험 문장을 듣고, 실험 문장에서 앞서 제시된 목표단어를 인지하면, 언제든지 가능한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 버튼을 누르도록 지시하였다.
본 실험에 앞서 연습시행을 실시하였고, 연습시행에서 80% 이상의 정확도를 보일 때까지 반복한 후 본 실험을 진행하였다. 연습시행과 본 실험에서 모두, 실험 자극에 관련된 구 경계, 단어 경계, 단어의 빈도 등은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본 실험에서는 연구자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구자의 감독 없이 실험참가자가 단독으로 실험을 진행하였다. 실험에 소요된 시간은 실험참가자 1인당 약 15분 정도였으며, 실험이 끝난 후 실험참가자에게 소정의 사례비를 지급하였다.
3. 실험 결과
반응시간은 녹음된 문장 내 목표단어의 첫 음절이 제시된 때부터 실험참가자가 버튼을 누른 시간까지로 측정하였다. 반응시간이 3 표준편차를 넘어가면 참가자의 부주의에 의한 반응으로 간주하여 분석에서 제외하였다. 실험 분석엔 틀린 반응을 제외한 올바른 반응의 평균 반응시간만 사용하였다. 모든 실험참가자의 정답률은 95% 이상이었으며, 실험 조건 및 통제 조건에 해당하는 자극의 정답률도 95% 이상이었다. 각 조건의 평균 반응시간과 표준오차는 표 2에 제시되어 있다. 또한, 음운구 경계 변인이 집단 간 변인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각 집단 내 변인인 고빈도 조건과 저빈도 조건의 반응시간을 통제 조건에서 뺀 방해효과를 계산하여 실험의 종속 변인으로 사용하였다. 방해효과가 크다는 것은 통제 조건보다 실험 조건에 대한 반응시간이 더 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해효과에 대한 피험자 분석 결과, 빈도 조건의 유의미한 주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지만(F1[1, 56]=2.36, p=0.132, η2=0.040), 음운구 경계 변인의 주 효과가 유의미하게 나타났으며(F1[1, 56]=4.305, p=0.043, η2=0.071), 상호작용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나타났다(F1[1, 56]=10.116, p=0.002, η2=0.153).
상호작용을 해석하기 위해 사후검증을 시행한 결과, 음운구 경계 내에서 빈도효과의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t1[1, 28]=3.020, p=0.005) 고빈도 조건을 저빈도 조건보다 유의미하게 빠르게 처리하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고빈도 목표단어에서 음운구 경계에 따른 방해 효과가 나타나(t1[1, 56]=3.550, p=0.001) 음운구 경계 내 집단이 음운구 경계 간 집단보다 목표단어의 탐색을 빠르게 한 것을 알 수 있었다(그림 1 참고).
4. 논의
본 연구는 한국어 말소리 분절 정보로 알려진 음운구 경계를 사용해 단어를 탐지할 때, 단어의 빈도가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수행되었다. 연구의 의미 있는 결과로 음운구 경계 조건과 빈도 조건 간에 유의미한 상호작용 효과가 나타났다. 사후검증을 통해 상대적으로 단어탐지가 쉬울 것으로 예상하였던 음운구 경계 내 조건에서만 고빈도 단어의 처리가, 저빈도 단어의 처리보다 빠르게 나타나는 단어빈도효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 효과는 음운구 경계 변인가 유의미한 주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 나타난 두 변인의 상호작용은 음운구 경계 요인과 빈도 변인이 말소리 분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Choi et al.(2011)은 음운구 경계가 말소리 분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들은 실험에 고빈도의 음운단어를 목표단어로 사용하였다. 이는 고빈도 조건에서 음운구 경계 내의 조건의 방해효과가 유의미하게 적었던 본 실험의 결과와 일치한다. 즉 음운구 경계가 말소리 분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재입증된 것이다. 비록 상호작용 효과는 두 변인의 주 효과에 대한 설명을 약하게 만들지만, 음운구 경계 변인의 주 효과가 유의미했던 것과 모든 빈도 조건에서 음운구 경계 내 조건이 더 작은 방해효과를 나타낸 것은 음운구 변인이 빈도 변인보다 말소리 분절에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만약 빈도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면, 모든 음운구 경계 조건에서 고빈도를 저빈도보다 유의미하게 빠르게 처리해야 했으며 고빈도 조건에만 음운구 경계 조건의 차이가 나타나고 저빈도 조건에서는 음운구 경계 조건의 차이가 없었어야 빈도 요인이 더 큰 영향이 미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두 변인의 말소리 분절에 대한 더 깊이 있는 해석을 위해 Choi et al.(2011)의 실험 2와 같이 음절찾기 과제와 같은 추가적인 실험을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
빈도 조건과 음운구 경계의 상호작용은 말소리 분절에서 인지부하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본 연구 결과는 음운구 경계 내 조건에서만 빈도효과가 나타났고, 음운구 경계 간 조건에서는 빈도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고빈도 목표단어에서는 음운구 경계효과가 나타났으며, 저빈도 목표단어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순차적으로 입력되는 정보를 단기기억 시스템에 유지하면서 다음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말소리 처리 과정은 그 자체가 상당한 인지부하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음운구 경계에 포함되어 있지 않거나 저빈도 단어를 처리해야 할 때 발생하는 더 큰 처리 부담이 단어재인을 어렵게 만든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말소리 분절에는 음운구 경계와 빈도가 상대적으로 인지부하가 적은 상황, 즉 고빈도 혹은 음운구 경계 내 조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상호작용 효과는 두 변인인 음운구 경계와 빈도가 말소리 처리의 각각 다른 단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단계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려준다. 소리 자체의 특성과 관련된 음운구 경계 정보는 감각 정보로 말소리 처리과정 초기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어휘적 특성에 속하는 빈도는 감각 정보 처리 이후에 처리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본 연구의 결과는 두 변인이 서로 다른 층위가 아니라 비슷한 층위에서 처리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빈도는 소리의 조합(Jescheniak & Levelt, 1994)부터 형태소, 단어(Monsell et al., 1989) 그리고 통사의 구성(Frazier & Fodor, 1978)까지 언어처리 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어휘변인이다. 이런 빈도의 처리는 어휘접속 전부터 후까지 다양한 시간대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뇌파 연구를 통해서 밝혀진 바 있다(Assadollahi & Pulvermuller, 2001; 2003; Hauk & Pulvermuller, 2004; Polich & Donchin, 1988; Rugg, 1990; Sereno et al., 1998; Smith & Halgren, 1987; Van Petten & Kutas, 1990). 이 중 Assadollahi & Pulvermuller(2001)와 Hauk & Pulvermuller(2004)의 연구는 단어의 빈도가 처리되는 시간대가 어휘접속 전인 150~200 ms 때부터 나타난다고 보고하여 빈도 처리가 단어재인의 아주 이른 시간에 처리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이보다 더 이른 초기의 감각 정보 처리 층위에서 빈도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더 정확한 시간대를 알아보기 위해선 추가 뇌파 연구가 필요하다.
각각의 음운구 경계 내 그룹과 음운구 경계 간 그룹의 절대적인 반응시간은 오히려 음운구 경계 내 조건이 더 느렸다. 이는 두 조건이 그룹 간 변인으로 지정되면서 단어탐지 과제 자체가 가지는 난이도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분석 결과 실험 조건과 통제 조건의 명확한 구분이 가능했던 음운구 경계 간 조건의 반응시간이 전체적으로 더 빨랐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그룹 간 변인으로 인해 나타나는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 앞서 실험 자극에서 기술한 것과 같이 통제 자극을 추가하여 조건들의 상대적 효과를 계산하였다.
종합하면, 본 연구의 결과를 통해 한국인이 한국어 말소리를 처리할 때 분절 정보가 포함된 운율 단위인 음운구 경계 정보와 어휘 변인인 빈도 정보를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목표 단어의 경계가 음운구 경계 안에 포함된 음운구 경계 내 조건에서 상대적으로 유용할 수 있는 인지적 자원이 여유로워 고빈도를 더 빠르게 처리하는 빈도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결과는 기존의 음운구 경계 내·간의 효과만을 설명한 선행연구들과 구별되는 점으로써, 단어재인의 주요 변인인 빈도 변인이 운율정보 처리와 같은 층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