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이 연구는 한국어 음운구 억양 유형(intonation pattern)의 변별적 특성과 변이 조건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둔다. 음운구(phonological phrase)는 한국어 억양을 기술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단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Jun(2000, 2003)의 K-ToBI(Korean Tones and Break Indices)에서 제시한 14가지 강세구(accentual phrase) 억양 유형과 Lee(1991, 1996)에서 제시한 4가지 말토막 억양 유형 외에 억양 유형 간의 변별적 특성이나 변이 조건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연구된 바가 없다. K-ToBI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강세구 억양 유형을 활용한 억양 기술(description)이 많았으나, 전사자(레이블러) 간의 강세구 억양 유형 일치도가 전문가 그룹에서조차도 52.2% 정도로 매우 낮아(Jun et al., 2000), 점차 강세구 억양 유형을 전사하는 사례도 줄 고, 강세구 억양 유형을 활용하는 연구나 응용 사례도 차츰 줄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비단 K-ToBI 전사 체계만의 문제는 아니며, 음운구 억양 유형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한 한국어 억양 연구의 한계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음운구는 한국어 운율 단위의 위계 구조 내에서 음운 단어(phonological word)와 억양구(intonational phrase)의 중간 단계에 위치하는 단위이다. 이 단위는 Jun(2000)의 K-ToBI에서는 강세구(accentual phrase)에 해당하고, Lee(1996)의 ‘한국어 억양 체계’에서는 말토막(rhythm unit)에 해당한다.1 강세구, 말토막, 음운구는 각각 서로 다른 이론적 배경(강세구는 억양 음운론, 말토막은 영국식 억양 이론, 음운구는 운율 음운론)을 토대로 명명된 용어이나 그것이 가리키는 발화상의 실체는 다르지 않다.
말토막 억양은 그 단위에 실현된 음높이 윤곽(pitch contour)을 보고 판단한다. 따라서 그 명칭만으로도 억양의 모양을 유추할 수 있는데, 오름조(rising), 내림조(falling), 수평조(level), 오르내림조(rise-falling)로 억양 유형은 모두 네 가지이다. 이에 반해 K-ToBI의 강세구 억양 유형은 모두 14가지로, 말토막 억양 유형에 비하면 비교적 많다.
K-ToBI에서는 하나의 음절에 얹히는 성조(tone)를 기반으로 억양을 기술한다. 강세구 억양 유형은 4음절 기준, ‘T+HL+Ha’이다. 첫 번째 음절의 ‘T’는 초성의 종류에 따라 [+지속성], [+긴장성], [+기식성]을 가진 자음이 올 경우 ‘H(high, 고조)’로 실현되며, 그 이외에는 ‘L(low, 저조)’로 실현된다.2 두 번째 음절의 ‘+H’와 세 번째 음절의 ‘L+’는 음절 수에 따라 4음절 미만에서는 수의적으로 실현된다. 따라서 두 번째 성조와 세 번째 성조는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네 번째 음절에 얹히는 ‘Ha’는 조건은 알 수 없으나 때에 따라 ‘La’가 실현된다고 기술되어 있다. 결국 그림 1에서 보듯이 ‘T+HL+Ha’는 성조가 얹힐 수 있는 네 자리 경우의 수를 모두 조합한 14가지 유형이다(2∏4=24=16 경우의 수에서 ‘H+HHa=HHa’, ‘LL+La= LLa’ 2가지 중복을 제외하면 14가지 유형 ‘H+HLa, H+HL+La, H+HL+Ha, HLa, HHa, HL+La, HL+Ha, L+HLa, L+HHa, L+HL+ La, L+HL+ Ha, LLa, LHa, LL+Ha’가 된다).3
말토막과 강세구 억양 유형은 기본적으로 전사자나 연구자가 발화에 실현된 억양의 모양을 보고 판단하여 기술하는 방식을 취한다.4 말토막은 그 단위에 실현된 음높이의 윤곽을 특정하여 억양 유형을 기술하며, 강세구는 특정 음절에 실현된 성조(tone)를 판단하여 억양 유형을 기술한다. 따라서 발화에 실현된 음높이의 미세한 차이에 의해서도 전사자들의 판단이 달라져 억양 기술이 달라질 수 있으며, 음높이 윤곽을 시각화하는 방법[x축, y축의 변위(range)]에 따라서도 그 모양이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전사자 간의 기술이 달라질 수 있다. 즉, 이처럼 억양의 모양을 보고 억양 유형을 판단하여 기술하는 방법은 전사자가 억양을 보는 시각, 즉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더욱이 말토막, 강세구의 모든 억양 유형이 언어학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지(변별적인 기능을 하는지), 지각적으로 구별이 가능한지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에 전사자들은 오로지 억양의 모양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억양을 기술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음운구 억양 기술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떠한 환경에서 어떠한 유형의 억양이 실현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특정 억양 유형이 실현되는 조건과 환경을 예측할 수 있도록 기술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실현된 억양이 왜 그렇게 실현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이 연구에서는 한국어 음운구 억양 유형의 ‘변별적 특성’과 억양 유형의 ‘변이 조건’을 구체적으로 밝혀 억양 기술의 신뢰성과 활용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2. 연구방법
음운구 억양 유형의 변별적 특성과 변이 조건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변이를 일으킬 만한 언어학적인 요인들을 추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재까지의 연구를 통해서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동원해야 하고, 언어 사용자로서 갖고 있는 직관도 동원해야 한다. ‘무엇’이 억양을 바꾸는가를 생각하고 그 ‘무엇’이 될 만한 요인들을 추정한 뒤, 연구를 통해 검증하고 변이 조건을 밝혀야 한다.
음운구 억양 유형에 변이를 일으키는 요인들을 체계적으로 가려내기 위해 언어학적인 사고의 틀인 음운, 형태, 통사적인 요인들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K-ToBI에 의해 알려진 바와 같이 음운구를 시작하는 첫 번째 분절음의 종류에 따라서 음운구의 음높이는 높게 시작할 수도 있고, 낮게 시작할 수도 있다. 또한 음절 수에 따라서도 억양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 둘은 음운구 억양 유형에 변이를 일으키는 조건으로 가장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가 음운론적인 조건이라면, 형태론적인, 통사론적인 조건으로도 고려할 만한 것들이 있다. 형태론적으로는 해당 음운구를 이루는 단어가 형태소 경계가 없는 단일어인지 형태소 경계가 있는 복합어인지, 복합어라면 3음절일 경우 ‘1음절+2음절’ 구조인지 ‘2음절+1음절’ 구조인지 등 형태소 경계 여부와 그 위치에 따른 억양의 변이를 고려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말 구조의 특성상 단어와 조사의 결합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실질형태소와 형식형태소의 경계도 억양의 모양에 영향을 주는지 고려해 볼 만한 요인이다. 통사론적으로는 해당 음운구가 놓이는 통사적 위치, 예컨대 발화(문장)의 시작 위치인지 중간 위치인지 끝 위치인지, 정상 어순인지 도치 어순인지 등에 따라 음운구 억양의 모양이 영향을 받는지 등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어 음운구 억양 유형의 변별적 특성과 변이 조건을 밝히기 위해서는 이처럼 억양 유형에 영향을 미칠 만한 모든 조건들을 따져보고 종합적으로 기술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 번의 연구로 모든 것을 밝힐 수는 없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을 택하여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연구는 가장 기본적인 변이 조건인 음운론적 요인에 집중하여 분절음의 종류와 음절 수에 따른 억양의 변화를 밝히고자 한다. 즉, 음운구를 구성하는 분절음의 종류는 음운구 억양의 모양을 바꾸는지, 음운구를 구성하는 음절 수는 음운구 억양의 모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히도록 한다.
실험 참여자를 모집할 때에는 방언, 연령, 성별 등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후 표준어 사용 화자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언 배경을 지닌 집단으로 연구를 확대할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모집 단계에서 제한을 둔 조건은 치아 교정기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 성장기 동안 3년 이상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사람,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니거나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쓰는 사람(이중언어화자)이다. 실험 참여자들에게는 모두 소정의 사례비를 지급하였다.
2022년 6월 현재 58명이 실험에 참여했다. 그중에 이 연구에서는 20–30대, 여성, 표준어 화자, 23명에 한정하여 분석한다. 20–30대 여성 표준어 화자 집단이 실험에 참여한 절대 다수의 화자들이기도 하고, 음성학 실험 연구에서 새로운 음성학적 사실을 밝힐 때 가장 먼저 분석되는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험에 참여한 피험자들에게는 성별, 연령, 출생지, 주요 성장지 정보를 제공받았는데, 이들은 모두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을 주요 성장지라고 보고한 사람들이었으며, 이 중에서 20명은 출생지도 수도권이었고, 3명만 충청(1인)과 강원(2인)에서 출생한 사람들이었다.
변인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음운구를 구성하는 분절음의 종류와 음절 수이다. 형태론적 영향을 배제하기 위하여 무의미 단어를 택하였으며, 통사론적 영향을 배제하기 위하여 해당 음운구의 출현 위치를 2번째 어절로 고정하였다.
분절음에 의한 영향을 알아보는 데에는 /빠/와 /마/를 사용하였다.5 무의미 단어로 특정 분절음을 지속적으로 발화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여 피험자의 피로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혀를 이용한 조음보다 입술을 이용하는 조음이 수월할 것이라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모음은 음향 신호의 강도를 강하게 받기 위하여 개구도가 가장 큰 /ㅏ/를 택하였다. 분절음에 의한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무의미 단어의 음절 수는 K-ToBI에서 강세구 억양 유형을 설명하는 기본적인 음절 수인 4음절로 한정하였다. 따라서 분절음 변인을 찾는 단어는 /빠/와 /마/가 4음절 각각의 모든 위치에 출현하는 경우의 수로 만들었다(표 1).
분절음 변인 | 음절 수 변인 | |||
---|---|---|---|---|
대상 단어 | 빠마마마 빠빠마마 빠빠빠마 빠마마빠 빠마빠마 빠빠마빠 빠마빠빠 |
마빠빠빠 마마빠빠 마마마빠 마빠빠마 마빠마빠 마마빠마 마빠마마 |
빠 빠빠 빠빠빠 빠빠빠빠 빠빠빠빠빠 빠빠빠빠빠빠 |
마 마마 마마마 마마마마 마마마마마 마마마마마마 |
음절 수 변인은 1–6음절로 한정하였다. 한국어 음운구를 구성하는 음절 수는 자유 발화에서 보면 1음절부터 13음절까지 발견되나 이 중에서 1–6음절이 96.8%를 차지한다.6 이에 따라 음운구를 구성하는 음절 수는 1–6음절로 한정하였다. 음절 수 변인을 알아보는 데 사용한 무의미 단어도 /빠/와 /마/이다.
관찰 변인은 아니지만, 환경적인 변인으로 후행하는 음운구의 시작 음높이를 통제하였다. 관찰 대상 음운구 뒤에 바로 이어지는 음운구의 시작 음높이가 관찰 대상 음운구 마지막 음절의 음높이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여 틀 문장은 ‘저기에 _____ 세 개가 있어요.’와 ‘저기에 _____ 네 개가 있어요.’ 두 가지를 사용하였다. ‘세 개가’는 높은 음높이로 시작하는 음운구이고, ‘네 개가’는 낮은 음높이로 시작하는 음운구이다. 따라서 실험 문장의 수는 분절음 변인 단어 14개, 음절 수 변인 단어 12개, 이를 합한 26개를 2개의 틀 문장에 넣은 52개이다.
전체 실험 문장은 이 연구의 분석 대상인 52개에, 이 연구에서 분석하지는 않지만 음운구 억양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고려되는 형태론적, 통사론적 변인을 포함한 88개 문장을 더하여 총 140개로 구성하였다.7 그리고 이 140개의 실험 문장을 수집하기 위하여 이와 동수인 140개의 무관한 문장(filler)을 섞어서 최종적으로 280개의 문장으로 실험을 진행하였다.8
전통적인 실험음성학적 연구 방법인 문장 읽기 방식을 택하였다. 말뭉치를 사용하여 특정한 음운구 억양 유형이 출현하는 조건과 환경을 분류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으나, 그보다는 조건과 환경을 더욱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실험은 K대학 음성과학실험실 내 방음실에서 진행하였다. 피험자에게는 실험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함께 본 실험에 들어가기에 앞서 실험과 무관한 문장으로 실험 진행 과정을 연습할 수 있게 하였다.
실험 문장은 Praat ExperimentMFC를 이용하여 피험자가 키보드나 마우스를 누르면 한 화면에 하나의 문장이 무순위로 제시되도록 만들었다.9 피험자에게는 화면에 제시된 문장을 보고 그대로 읽어 달라고 요청하였고 스스로 잘못 읽었다 판단하면 얼마든지 다시 녹음할 수 있게 허용하였으며, 실수로 두 번 클릭해 미처 말하지 못하고 문장이 화면에서 사라진 경우 되돌리기 버튼을 통해 이전의 문장을 볼 수 있게 허용하였다. 되돌리기 가능 횟수와 다시 말하기 가능 횟수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매 30개의 문장이 제시된 뒤에는 잠시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으며, 30개가 다 제시되지 않았더라도 피험자는 다음 문장을 볼 것인지 여부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었다. 피험자 한 사람당 실험에 소요된 시간은 20분 내외였다.
녹음기는 TASCAM의 DR-44WL, 마이크는 단일지향성 콘덴서 마이크인 SHURE의 KSM44를 이용하였다. 녹음 파일은 표본추출율 44,100 Hz, 양자화 16 Bit, WAV 형식으로 저장되도록 설정하였다.
음성 파일 가공, 음높이 측정, 분석은 모두 Praat(ver.6.1.37)에서 script를 작성하여 진행하였다. 녹음 단계에서 Praat ExperimentMFC를 이용하였기 때문에 화자별로 화면에 제시된 문장의 순서는 *.ResultsMFC 형식의 파일에 기록되었다. 화자별로 280개의 모든 문장이 녹음된 음성 파일에서 휴지 구간을 자동으로 구획하는 TextGrid(silences) 파일을 생성하고 ResultsMFC 파일을 이용하여 각 문장의 파형(waveform) 위치에 해당 문장 내용이 들어가도록 레이블링을 하였다. 이후 피험자가 안 읽었거나, 한 번 이상 읽어서 싱크(sync)가 맞지 않는 부분을 찾아 파형과 문장 내용의 싱크를 맞추고 문장 단위로 나누어 저장하였다. 문장의 시작과 끝은 파형을 기준으로 구획하였다. 즉, 파형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파형이 끝나는 지점까지를 문장의 구간으로 구획하였다.
문장별 음성 파일의 TextGrid 파일에서는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파일명’, ‘발화’, ‘음운구’, ‘메모’ 층렬(tier)을 만들고 ‘음운구’ 층렬에서 음운구 단위로 레이블링하였다. 관찰 대상 음운구는 선행 음운구 /저기에/의 /에/ 파형이 끝나는 지점부터 관찰 대상 음운구의 파형이 끝나는 지점을 기준으로 구획하였으나, /저기에 빠마마 네 개가 있어요/의 /마 네/처럼 공명음이 연속할 경우 /ㅏ/의 제2포먼트를 기준으로 음운구를 구획하였다. 또한 ‘저기에 (휴지) 빠마마마 (휴지) 세 개가 (휴지) 있어요’처럼 각 음운구 사이에 휴지가 발생한 경우, 선행 음운구 파형의 끝 지점과 후행 음운구의 파형이 시작되는 지점까지를 휴지 구간으로 구획하였다. 다만, 폐쇄음 ‘빠’로 시작하는 음운구는 파형의 시작 60 ms 전을 음운구의 시작으로 설정하였다.10
레이블링 과정에서는 분절음을 잘못 읽은 경우나(예, /저기에/를 [저에게]로, /세 개가/를 [네 개가]로 등), 머뭇거림이 동반된 경우(예, /저기에/에서 [저기:에]처럼 /기/의 /ㅣ/모음이 길게 늘어난 경우), 음운구 사이에 긴 휴지가 나타난 경우(예, ‘저기에 빠마마빠 (3초 정도의 휴지) 네 개가 있어요’), 말을 더듬은 경우(예, [저저기에], [세세개가] 등) 등의 오류는 ‘메모’ 층렬에 적고 이러한 문장들은 이후 분석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음높이는 음성 파일에서 Pitch 개체(object)를 생성한 뒤, Pitch 개체를 PitchTier 개체로 변환하여 PitchTier 개체에서 측정하였다. Pitch 개체에서는 실제 음높이가 산출된 지점의 값만 추출할 수 있지만, PitchTier에서는 휴지 구간이나 폐쇄 지속 구간도 음높이 값을 추정하여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억양의 변화와 그 궤적을 살피기 위하여 음높이 값이 산출되지 않은 묵음 구간이나 휴지 구간의 음높이까지 추정하기 위해서 PitchTier 개체를 활용하였다.
음운구의 음높이는 하나의 음운구를 10등분하여 시작 지점과 끝 지점을 포함한 11곳에서 측정하였다. 억양의 모양은 x축 간격과 x축의 길이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모두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모든 음운구의 길이를 동일하게 조정하는 정규화(standardization) 방법을 택하였다. 그림 3은 음운구 음높이 측정 예시이다. P0은 시작 지점을, P10은 끝 지점을 뜻하며, P1, P2–P9는 음운구의 각각 10%, 20%–90% 지점을 뜻한다.11
3. 연구 결과
1,196개의 문장(=문장 26×틀 문장 2×화자 23) 중에서 화자가 잘못 읽은 오류 문장은 65개였다. 전체 토큰 중 5.4%에 해당한다. 이 65개의 문장을 제외하고 1,131개의 문장을 대상으로 결과를 산출하였다. 이 장에서는 억양의 음높이 값보다 음높이가 형성하는 전체적인 모양과 그로 인해 구별되는 억양 유형의 변별적 특징 및 억양이 변이되는 조건을 중심으로 설명할 것이다. 따라서 연구 결과는 그래프를 중심으로 설명하도록 한다. 해당 문장의 수(N), 평균(M), 표준편차(SD) 등의 구체적인 정보는 부록(부록1, 2)으로 첨부하였다.
위쪽이 높게 시작하는 음운구(‘빠’ 시작류)의 모양이고, 아래쪽이 낮게 시작하는 음운구(‘마’ 시작류)의 모양이다. 그래프에서 x축은 시간을 뜻하고, y축은 음높이를 뜻한다. 시간은 앞서 밝혔듯이, 음운구 전체 시간을 100으로 치환한 백분율로 나타내었다. P0은 시작 지점이고, P1은 음운구 전체 시간의 10%가 되는 지점, P2는 20%가 되는 지점이며, P10은 100%가 되는 끝 지점이다. 음높이의 단위는 Hz이고, 150 Hz부터 350 Hz 범위로 나타내었다(그래프에 대한 설명은 이하 제시되는 모든 그래프에서 동일하다).
두 그림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직선도 보이고, 곡선도 보인다.13 예상하듯이 직선은 3음절 이하의 음운구에서 나타났고, 곡선은 4음절 이상의 음운구에서 나타났다. 억양의 모양을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하여 3음절 이하의 음운구와 4음절 이상의 음운구를 나누어 그리면 그림 5와 같다.14 직선과 곡선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이처럼 음절 수에 따라 억양의 모양이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은 K-ToBI를 통해서도 예상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음의 (1)은 그림 5를 통해서 관찰되는 새로운 사실이다.
음절 수에 따른 내용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음운구 시작 지점의 음높이는 한 곳으로 수렴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또 환경 변인으로 고려했던 후행 음운구의 시작 음높이는 관찰 대상 음운구의 억양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행 음운구에 의해서 P9 지점 이후에 음높이가 높아지는 것과 낮아지는 것 두 부류가 구분되나, 이 차이가 P9 지점 이전의 억양 모양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그림 6은 분절음에 따른 억양의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역시 위쪽이 높게 시작하는(‘빠’ 시작류) 음운구이고, 아래쪽이 낮게 시작하는 음운구(‘마’ 시작류)이다. 4음절로 고정하였기 때문에 모두 직선은 보이지 않으며 곡선만 나타났다. 그림 6을 자세히 관찰하면 곡선을 몇 가지 유형으로 묶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우선 높게 시작하는 음운구 유형에서 P3–P7 사이를 주목해 보면 이 지점에서 곡선이 세 가닥으로 구분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 세 가닥을 구분하여 높게 시작하는 음운구의 억양을 나누어 보면 그림 7과 같다.
이처럼 나누고 보면 억양 유형의 그룹 내 동질성은 더욱 명확해지고, 그룹 간 차이도 더욱 선명해진다. 그림 7: 하좌의 곡선 모양을 이루는 음운구에는 공통적으로 2음절과 3음절에 /마/가 들어있다. 즉, 첫 번째 음절 /빠/에서 높게 시작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음절에서는 분절음 /ㅁ/로 인해 음높이가 낮아진 형국이다. 한편 그림 7: 하우의 곡선을 이루는 음운구의 공통점은 세 번째 음절이 /마/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분절음 /ㅁ/가 세 번째 음절의 음높이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나머지 그림 7: 상은 이러한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음운구이다. 이 음운구는 앞서 보았던 /빠빠빠빠/처럼 /빠/로만 구성된 4음절 이상의 음운구 억양 모양과 일치한다.
다음 그림 8은 낮게 시작하는 음운구 유형을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눈 것이다. P6–P8 구간에서 음높이가 낮게 떨어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기준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구분 역시 억양 유형의 그룹 내 동질성을 더욱 명확하게 보이고, 그룹 간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결과를 보인다.
P6–P8 구간에서 음높이가 낮아지지 않는 곡선(그림 8: 우)의 공통점은 세 번째 음절이 /빠/로 구성된 음운구라는 것이다. 분절음 /ㅃ/가 음높이 변동에 관여한 결과로 보인다. 그림 8: 좌는 세 번째 음절이 /빠/가 아닌 /마/로 구성된 음운구인데, 앞서 보았던 /마/로만 구성된 4음절 이상의 음운구와 그 모양이 같다.
4. 논의
변별적 특성을 찾기 위해서는 기본형과 변이형을 설정해야 한다. 음운과 변이음, 형태와 이형태를 설정할 때처럼 기준이 있어야 한다. 예측 가능해야 하고, 타당해야 한다. 3장의 결과에서 보듯이 /마마마마/, /빠빠빠빠/에서 관찰되는 억양을 볼 때, K-ToBI에서 강세구 유형을 ‘T+HL+Ha’로 설정했던 것은 매우 타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K-ToBI의 기술로 설명하기 어려운 점도 관찰되는데, 바로 /빠/로 시작하는 음운구 유형의 곡선 모양이 그것이다. K-ToBI에 의하면 /빠/처럼 고조로 시작하는 음운구에서는 ‘H+HLHa’의 유형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는 이와 달리 ‘L+HL+Ha’로 나타났다. 이후에 /빠/ 시작류의 첫 번째, 두 번째 음절의 음높이 유형이 ‘H+H’와 ‘L+H’로 구별이 되는지 통계적으로 검증도 해야 하고, 이 두 유형을 한국인들이 지각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지도 검증을 해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현재 자료를 통해서는 /빠/ 시작류의 억양 곡선도 기본적으로 ‘L+HL+Ha’인 것으로 보인다.15 한편, /빠/ 시작류의 억양과 /마/ 시작류의 억양은 230 Hz를 기점으로 음높이가 실현되는 대역이 나뉘었는데, 이를 통해 볼 때 K-ToBI에서의 설명과 달리 [+기식성], [+긴장성], [+지속성]을 가진 분절음은 음운구의 첫 음절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음운구 전체의 음높이 대역을 높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4음절 이상에서 보이는 곡선을 기본형으로 삼을 때, 분절음 구성이 동일한 /빠빠빠빠/나 /마마마마/에서 나타나는 ‘LHLH’ 모양을 기본형으로 삼고, 분절음의 종류가 곡선에 미치는 영향으로 변이 조건을 설명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림 9는 4음절 이상의 동일한 분절음으로 구성된 음운구의 억양을 나타낸 것이다.16 음운구의 10% 지점인 P1까지는 음높이가 전이되는 구간이라 한다면, ‘빠’ 시작류는 전이 구간을 지난 10% 지점부터 30% 지점까지 상승한 뒤, 70% 지점까지 하강하고, 90% 지점까지 다시 상승하는 모양을 보이고, ‘마’ 시작류도 10% 지점에서 상승을 시작하여 50% 지점까지 이어지고, 그 뒤 70% 지점까지는 하강한 뒤 다시 90% 지점까지 상승하는 모양을 보인다. 두 곡선 모두 ‘LHLH’의 곡선 모양을 보인다. 그리고 230 Hz를 기점으로 두 억양 곡선의 음높이 대역이 구분된다.
3장의 결과에서 보듯이 3음절 이하의 음운구에서는 억양이 곡선이 아니라 직선으로 관찰되었다. K-ToBI의 14가지 강세구 유형 중에 10가지가 3음절 이하의 강세구에 대한 것인데, 목록은 (2)와 같다.
이 연구의 결과를 토대로 보면, 3음절 이하의 강세구 억양 유형 10가지가 모두 필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 역시 지각적인 검증이 필요하리라 생각하지만, 3음절 이하의 음운구에서는 억양이 직선으로 나타나는데, ‘빠’ 시작류에서는 높은 음높이가 유지되는 유형으로, ‘마’ 시작류는 낮게 시작해서 상승하는 유형으로 설정할 수 있다. 그림 10은 동일한 분절음으로 구성된 3음절 이하의 단어만을 대상으로 작성한 음운구 억양 모양이다.
그림 9와 비교해 보면, ‘3음절 이하’라는 조건은 억양을 곡선에서 직선으로 바꾸는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장에서 분절음에 따른 억양 유형을 몇 가지로 구분하였다. 각각 구분했던 억양 유형을 그 억양 유형 내의 평균으로 단순화해서 제시하면 그림 11과 같다.
높게 시작하는 음운구 유형은 세 가지 곡선으로 구분되고, 낮게 시작하는 음운구 유형은 두 가지 곡선으로 구분된다. 높게 시작하는 음운구 유형은 4음절 /빠빠빠빠/에서 나타난 모양과 동일하게 230 Hz 이상의 높은 대역에서만 굴곡을 보이는 유형과, 20% 지점에서 하강을 시작하여 60% 지점에서 최저점을 이루고 다시 90% 지점까지 상승하는 유형, 그리고 50% 지점에서 급격하게 하강하여 70% 지점에서 최저점을 이루고 다시 90% 지점까지 상승하는 유형 세 가지로 나뉜다. 편의상 각 유형의 첫 번째 하강 시점을 주목하여 P3, P2, P5 유형이라 하면, 가장 일찍 하강하는 P2 유형의 공통점은 2음절과 3음절에 /마마/가 들어있다는 것이고, 가장 늦게 하강하지만 가장 급격하게 하강하는 P5 유형은 3음절에 /마/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보건대, 분절음 /ㅁ/는 음높이 하강을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낮게 시작하는 음운구에서 구분되는 두 가지 곡선도 70%–80%에서 하강이 일어나는 곡선과 그렇지 않은 곡선으로 나뉘는데, 하강이 일어나는 곡선이 /마마마마/에서 보였던 것과 같은 유형이라면 하강이 일어나지 않은 유형이 변이형이라고 볼 수 있다. 하강이 일어나지 않은 유형은 모두 3음절에 /빠/가 들어있던 음운구이다. 분절음 /ㅃ/가 음높이 하강을 저지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요약하면 (3)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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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어 음운구 억양 유형의 변별적 특성과 변이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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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어 음운구의 기본형은 LHLH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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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음절 수와 분절음 종류는 음운구 억양의 변이를 만드는 조건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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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음절 수 3음절 이하는 억양을 곡선에서 직선으로 바꾸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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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음운구의 첫 번째 분절음은 음운구 억양의 음높이 형성 대역을 결정하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구체적으로 첫 번째 분절음이 [+긴장성], [+기식성], [+지속성]을 지니면 음운구 억양은 높은 대역에서 형성되고, 그렇지 않으면 낮은 대역에서 형성된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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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음운구 중간에 놓이는 분절음은 음높이를 낮추거나, 낮아지는 것을 막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2-2)의 조건에 의해 높은 음높이 대역에서 실현되는 음운구에서는 [–긴장성], [–기식성], [–지속성]을 지닌 분절음이 음높이를 음높이 변위의 최저 선까지 낮추는 조건으로 작용하고, 이와 반대로 낮은 대역에서 실현되는 음운구에서는 [+긴장성], [+기식성], [+지속성]을 지닌 분절음이 음높이가 낮아지는 것을 막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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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의 위쪽 그림에는 지금까지 보인 각 억양 유형을 모두 제시하였다. 물리적인 차이를 잘 드러내기 위해 몇 가지 안내선을 함께 표시하였다. 음높이를 나타내는 안내선으로는 높은 대역과 낮은 대역의 기준이 되는 중간 지점인 230 Hz와 그로부터 ±50 Hz가 되는 상위선 280 Hz, 하위선 180 Hz를 표시하였다. 시간과 관련된 x축에는 전이 구간인 P0–P1, P9–P10을 제외한 P1부터 P9까지를 네모 상자로 표시하고 네모 상자의 x축을 다시 네 등분하여 그 경계를 점선으로 표시하였다. 그림 12의 아래쪽 그림에는 7개 억양 유형을 기본형과 변이 조건으로 도식화하였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음절 수와 분절음의 종류에 따른 영향을 고려하여 한국어의 음운구 억양 유형을 설정하면, 그림 12와 같이 7개의 억양 유형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음운론적인 변인만을 대상으로 관찰한 결과이므로 ‘잠정적인’ 억양 유형으로 설정한다.
5. 결론
이 연구는 한국어 음운구 억양 유형의 변별적 특성과 변이 조건을 밝히기 위한 목적의 일환으로 음운론적인 조건인 음절 수와 분절음 종류가 음운구 억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4음절을 기준으로, 음운구 억양은 LHLH를 기본형으로 설정할 수 있으며, 음절 수와 분절음 종류가 변이를 만드는 조건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음절 수는 억양을 곡선에서 직선으로 바꾸는데, 그 기준은 3음절 이하이다. 분절음은 음높이 대역과 음높이 변동에 영향을 미치는데, 첫 번째 분절음은 음운구 억양이 형성되는 음높이 대역에 영향을 미치고, 그 이하의 분절음은 음높이 변동에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 분절음이 [+기식성], [+긴장성], [+지속성]을 지니면 높은 대역, 그렇지 않으면 낮은 대역에서 억양이 형성된다. 높은 대역에서 실현되는 억양에서 두 번째 이하의 분절음이 [–기식성], [–긴장성], [–지속성]을 지니게 되면 음높이를 낮은 대역의 최하위까지 하강시키고, 낮은 대역에서 실현되는 억양에서는 [+기식성], [+긴장성], [+지속성]을 지닌 분절음이 LHLH의 두 번째 하강을 저지한다. 그러나 아직 형태적, 통사적 요인을 고려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으며, ‘음절 수’ 조건이 더 먼저인지 ‘길이’ 조건이 더 먼저인지 등 더 살펴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에 ‘잠정적인 7가지 유형’이라고 기술하였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음절 수와 분절음의 종류라는 음운론적 조건 외에 다른 조건이 음운구 억양 유형의 변이에 개입하는 것을 막고자 무의미 단어만을 이용하였는데, 무의미 단어로 인해 실험 결과에 영향이 있지는 않았는지를 더 정밀하게 검증해야 할 필요도 있다. 예컨대 ‘빠마마마’와 같은 무의미 단어에서 ‘빠’와 ‘마마마’ 사이에 경계가 생성되었을 가능성 등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유의미 단어를 대상으로 한 음절 수 변인에 대해서 조사해야 하며, 마찬가지로 형태소 경계가 있는 유의미 단어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 즉, 유의미 단어에서도 무의미 단어의 음절 수 변인에 의한 결과와 동일한 결과가 나타나는지, 형태소 경계가 음운구 억양 유형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를 통해 단계적으로 밝히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