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본 연구는 한국어 동형다의 종결어미 ‘-(으)ㄹ걸’의 의미변별에 작용하는 경계음절의 성조형태 및 그 음높이가 선행음절의 음높이와 어떤 상관관계로 작용하는지 살피고 성조형태 외에 의미 변별에 작용할 수 있는 운율요소가 무엇인지 지각실험을 통해 조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동형다의 종결어미는 하나의 종결어미가 둘 이상의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를 말한다. 한국어의 동형다의 종결어미는 매우 다양하며 대부분 경계성조의 형태로 의미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거든요’는 경계성조가 오름이면 후행절에 대한 ‘전제’나 ‘배경’으로, 내림이면 선행절에 대한 ‘이유’로 해석된다(Chegal & Kim, 2010; Lee, 2020; Park, 2009; Park, 2016; Park, 2021; Yang, 2020). 그러나 동형다의 종결어미의 의미와 경계성조가 반드시 일대일로만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Jo, 2011; Jo, 2014; Yang & Kim, 2019). 이는 동일 형태의 경계성조가 두 개의 서로 다른 의미에 사용되어도 발화 문맥에 의해 의미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측’과 ‘후회’의 의미를 내포하는 ‘-(으)ㄹ걸’은 두 의미가 반드시 상반된 형태의 경계성조로만 실현되어야 한다. 이는 두 의미가 서로 배타적인 경계성조로 실현되기 때문인데 일반적으로 경계성조가 오름이면 추측, 내림이면 후회로 해석된다(Chegal & Kim, 2010; Heo, 2020; Kwon, 2010; Lee, 2020). 그 결과 오름과 내림의 이분법적 경계성조는 오랫동안 ‘-(으)ㄹ걸’의 두 의미를 구별하는 주요 운율변수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연구들은 한국 화자들의 실제 발화에서 ‘-(으)ㄹ걸’의 두 의미가 반드시 오름과 내림의 두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었다. 특히 ‘-(으)ㄹ걸’이 ‘후회’로 사용되는 경우 내림조 외에 중간 수평조나 낮은 수평조로 실현되는 경우도 관찰되었다(Chang, 2012; Seo, 2014). 즉 후회의 경우 내림조로 실현되는 비중이 높으나 내림조로 상정될 수 없는 수평조로도 의미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인 한국어 학습자들의 ‘-(으)ㄹ걸’ 발화문에 대한 한국어 모국어화자의 지각평가에서 오름조의 경계성조가 추측으로 지각되지 않거나 내림조가 후회로 지각되지 않기도 했다(Yune, 2020). 이는 경계성조의 형태가 의미 변별의 유일한 운율변수가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경계성조의 형태가 ‘-(으)ㄹ걸’의 의미 변별에 유의미한 작용을 하지 않는 경우, 의미판별은 경계음절과 선행음절 간 음높이 차이에 의해 변별될 수 있었다. 즉 오름조의 경계성조라도 선행음절보다 평균적으로 낮은 음역대에서 실현되면 후회로, 내림조의 경계성조가 선행음절보다 높게 실현되면 추측으로 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경계성조의 형태가 ‘-(으)ㄹ걸’의 의미 변별에 작용하는 유일한 운율변수가 아니라면 경계성조와 상호작용하는 유효한 운율변수를 확정하고 그 범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으)ㄹ걸’과 같은 동형다의 문장에서 경계성조의 실현은 그 형태와 더불어 주변 음과의 상관성 안에서 파악해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선행연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경계성조의 형태와 더불어 경계음절과 선행음절 간 음높이 차가 의미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간주하여 두 요소 간 상호작용양상을 한국어 원어민화자들의 지각평가를 통해 살피고자 한다.
2. ‘-(으)ㄹ걸’의 의미와 경계성조의 음운론적 기저형
상기한 바와 같이 ‘-(으)ㄹ걸’은 추측과 후회를 주된 의미로 아쉬움, 감탄, 등 여러 의미를 전달하는 대표적인 동형다의 종결어미이다. 이 모든 의미가 동일한 통사·형태구조를 지닌 서술문의 형태로 제시되기에 의미 변별을 위한 문장 경계억양의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더구나 ‘-(으)ㄹ걸’의 주요 의미인 추측과 후회는 경계성조의 형태에 의해서만 구별되는 것으로 여겨져 경계성조의 문법 표지성은 매우 높다(Kwon, 2010).
본 장에서는 선행연구에서 관찰된 추측과 후회 문장의 경계 성조 목록을 살피고 두 의미와 직결된 경계성조의 음운론적 기저형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경계성조의 형태와 ‘-(으)걸’의 마지막 두 음절과의 음높이 차이의 상관성 조사를 위해서는 우선 의미에 따른 경계성조의 기저형이 확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행연구에서 ‘-(으)ㄹ걸’의 경계성조에 대한 음운론적 분석은 대부분 Jun(2000)의 운율음운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Jun은 한국어의 경계성조를 모두 9개의 성조형으로 분류하였는데 오름조에는 H%, LH%, HLH%, LHLH%가, 내림조에는 L%, HL%, LHL%, HLHL%, LHLHL%가 속한다. 경계성조는 한 음절 내에서 피치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에서 구성조와 구별되며 각 경계성조는 의사소통 과정에서 각기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고 한다.
이를 배경으로 선행연구들에서 나타난 추측과 후회의 경계성조를 살펴보면 추측은 H%, HL%, LH%, HLH%(Chang, 2012; Choi, 2010; Lee, 2020; Seo, 2014; Xu, 2020) 등이며, 후회는 L%, LH%, HL%, M%(중간 수평조), 낮은 수평조 등이다(Chang, 2012; Choi, 2010; Lee, 2020; Seo, 2014; Xu, 2020). 이 중 추측에 사용된 HL%는 큰 폭의 상승에 소폭의 하강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오름조로, 후회의 LH%는 큰 폭의 하강에 이은 소폭의 상승이 나타나므로 내림조로 간주되었다. 음성학적 분석에서도 추측의 경계성조는 높은 변동폭으로 고음역대에서, 후회는 낮은 변동폭으로 저음역대에서 실현됨으로써 대립을 보여주었다(Chang, 2012; Lan, 2018; Xuan, 2013). 따라서 발화측면에서 ‘-(으)ㄹ걸’의 두 의미는 음운론·음성학적으로 상반된 경계성조를 보인다. 음운론적으로 추측은 오름조(H%, LH%, HLH%), 후회는 내림조(L%, HL%)나 중간 및 낮은 수평조로 실현되며, 음성학적으로 추측은 고음역대에서, 후회는 저음역대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다양한 표면형에도 불구하고 추측과 후회의 경계성조에서 가장 우세하게 나타나는 성조형이 존재하는데 각각 오름조인 H%와 내림조인 L%이다(Chang, 2012; Choi, 2010; Seo, 2014). 즉 추측의 경우 동일한 오름조라도 LH%나 HLH%보다는 H%가, 후회에서는 수평조보다는 L%이 우세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이들 결과를 바탕으로 추측은 오름조 중 H%를, 후회는 내림조 중 L%을 음운론적 기저형태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도 H%와 L%을 각각 추측과 후회문장의 경계성조의 기저형으로 삼고 선행음절과의 상관성을 조사하고자 한다.
3. 연구 방법
본 연구의 분석자료는 ‘-(으)ㄹ걸’이 후회와 추측으로 사용된 다음 두 문장으로 2020년 연구에 사용된 문장과 동일하다. 주어를 제외하면 두 문장의 형태 및 통사구조는 동일하다. ‘-(으)ㄹ걸’의 두 의미는 문장의 주어를 통해 유추 가능하다. 두 문장은 서법상 평서문의 형태이나 발화에서 추측은 오름으로, 후회는 내림의 경계억양으로 발화된다.
① (미나도) 우산을 가져올걸.
② (우리도) 우산을 가져올걸.
분석자료 녹음에는 경기 출신의 한국어 표준어 화자인 20대 초반의 남성화자가 참여하였다. 녹음 전 연구목적을 설명하고 녹음자료를 제시한 뒤 두 문장에서 ‘-(으)ㄹ걸’의 의미를 스스로 변별하게 하고 그에 따른 억양 차이를 파악하게 하였다. 피험자가 두 문장의 의미와 억양형태를 바르게 연결하는지 최종 확인한 후 녹음을 실시하였는데, 보다 자연스럽고 정확한 녹음을 위해 녹음 전 충분한 연습 시간을 가지게 했다.
녹음은 조용한 방에서 진행되었고 SONY사의 PCM 10 녹음기와 내장 마이크를 사용하여 16 bits 44,000 Hz 모드로 녹음하였다. 녹음 중 피험자는 동일 문장을 6회 반복 발화하였다. 더듬거림이나 자연스럽지 못한 경우는 6회를 초과 발화하였다. 피험자는 두 문장의 의미를 바르게 파악하여 그에 맞는 정확한 억양으로 두 문장을 산출하였다. 피험자가 발화한 전체 문장 중 가장 자연스럽고 피치곡선이 잘 드러나는 문장을 선택하여 원자료로 사용하였다. 원자료를 바탕으로 청취실험에 사용할 실험 자극이 생성되었다. 실험자극은 추측과 후회의 문장에서 주어를 생략한 ‘우산을 가져올걸’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원자료로 사용된 두 문장의 음성 파형과 피치곡선은 그림 1과 그림 2에 제시되었다. 그림 1은 추측, 그림 2는 후회 문장이다. 두 문장은 모두 두 개의 강세구로 실현되었고 마지막 강세구 경계는 억양구 경계와 일치한다. 첫 강세구(우산을)는 추측과 후회 모두 LHL로 실현되었고 두 번째 강세구(가져올걸)의 경우 추측은 LHLH%로 후회는 L(H)HL%1로 실현되었다. 따라서 마지막 두 음절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성조형은 유사하다.
위의 두 문장에서 분석 대상이 되는 마지막 두 음절 ‘올걸’(음영으로 표시)의 음운론적·음성학적 특징은 표 1과 같다. 우선 추측과 후회의 경계성조는 각각 기저형인 H%와 L%로 생성되었고 선행음절인 /올/의 성조형은 L과 H이다. /올/의 평균 음높이는 추측 94.37 Hz, 후회 112.10 Hz이며, 문장 경계음절인 /걸/의 평균 음높이는 추측 126.7 Hz, 후회 85.4 Hz이다. 선행음절과 경계음절의 평균 음높이 차이는 추측 10.2 Qt(quarter tone),2 후회 9.4 Qt이다. 추측의 경계성조 H%의 최저점은 114 Hz, 최고점은 143.7 Hz로 변동폭은 8 Qt이다. 후회의 경계성조 L%의 최고점은 93.6 Hz 최저점은 80.9 Hz로 5.7 Qt의 변동폭을 보인다.
/올/ | /걸/ | ||
---|---|---|---|
추측 | 성조형태 | L | 오름 (H%) |
평균 음높이 | 94.37 Hz | 126.70 Hz | |
경계성조 최저–최고점 | – | 114–143.7 Hz | |
후회 | 성조형태 | H | 내림 (L%) |
평균 음높이 | 112.10 Hz | 85.40 Hz | |
경계성조 최저–최고점 | – | 80.9–93.6 Hz |
위의 원 자료로부터 실험자극을 생성하였다. 실험자극은 각 문장의 마지막 두 음절 간 음높이 차가 경계성조 형태와 어떤 양상으로 상호작용하는지 조사하기 위하여, 선행음절 /올/의 음높이를 고정하고 경계음절인 /걸/의 성조형태를 추측의 H%와 후회의 L%로 고정한 채 경계음절의 평균 음높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생성하였다. 즉 실험문장인 ‘우산을 가져올걸’에서 경계 선행음절인 /올/까지의 피치를 그대로 유지한 채 경계음절 /걸/의 음높이를 선행음절인 /올/을 기준으로 1 Qt씩 높이거나 낮추어 생성하였다. 경계음절의 음높이 조절에는 Praat의 manipulation과 shift pitch frequencies, multifly pitch frequencies 기능이 사용되었다. 아래의 그림 3과 그림 4는 추측과 후회로 생성된 각 문장에서 선행음절(penultimate syllable)과 경계음절의 조정된 음높이 차이를 보여준다.
그림 3의 추측문장에서, 선행음절(p.s.)인 /올/의 평균 음높이는 94.37 Hz이다. 이를 기준으로 선행음절과 평균적으로 동일한 음높이의 경계음절(0 Qt)과 선행음절보다 평균 –5 Qt 낮은 위치의 최저 경계성조부터 +15 Qt 높은 최고 경계성조까지 1 Qt씩의 차이를 갖는 21개의 실험문장을 생성하였다. –5 Qt에 위치하는 경계성조의 평균 음높이는 81.61 Hz이며, 최저점과 최고점은 각각 73.32 Hz와 92.16 Hz로 화자의 최저음역대에 위치한다. +15 Qt에 위치한 경계성조의 평균 음높이는 146.1 Hz이며, 최저점과 최고점은 각각 130.4 Hz와 165.5 Hz이다. 최고점은 원 자료의 143.7 Hz보다 높은 음역대에 위치한다. 이 21개의 문장에 음높이가 조절되지 않은 원 자료가 더해져 총 22개의 실험문장이 생성되었다.
그림 4는 후회문장으로 경계 선행음절 /올/의 평균 음높이는 112.10 Hz이다. 실험자극은 선행음절과 평균 음높이가 동일한 경계음절(0 Qt)을 기준으로 1 Qt씩의 높이거나 낮추어 생성되었다. 그 결과 선행 음절보다 평균 10 Qt 낮은 경계성조부터 10 Qt 높은 경계성조까지 21개의 실험문장이 생성되었다. –10 Qt의 경계성조는 평균 83.37 Hz로 최저점과 최고점은 각각 80.28 Hz와 91.14 Hz이다. 이는 화자의 최저음역대에 위치한다. +10 Qt의 경계성조는 평균 음높이가 149.8 Hz이며 최저점과 최고점은 각각 163.4 Hz와 142.2 Hz로 최저점은 화자의 음역보다 약간 낮게, 최고점은 높게 위치한다. 후회 문장 역시 이 21개의 문장에 음높이가 조절되지 않은 원 자료가 더해져 모두 22개의 실험문장이 생성되었다. 따라서 실험문장의 경계성조의 평균 음높이는 추측 –5 Qt–+15 Qt, 후회 –10 Qt–+10 Qt로 다른 분포로 나타나는데, 이는 원 자료에서의 경계 선행음절의 음높이와 화자의 최저 및 최고 음역대를 고려하여 상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포의 차이가 경계성조와 두 음절의 음높이 차이의 상관성 조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지각실험에는 Praat script MFC Experiment가 사용되었다. 지각실험 자료는 추측 22문장, 후회 22문장, 그리고 위의 추측과 후회 문장이 혼합된 44개의 문장으로 총 88문장이다. 지각실험은 3단계로 진행되었다. 1단계는 22개의 추측 문장에 대한 지각실험으로 ‘다음은 추측문장이 맞습니까?’라는 지문과 함께 5개의 선택 항목 ‘(1) 전혀 아니다, (2) 아니다, (3) 알 수 없다, (4) 그렇다, (5) 매우 그렇다’가 제시되었다. 2단계는 후회의 22문장에 대한 지각실험으로 ‘다음은 후회문장이 맞습니까?’라는 지문과 함께 역시 5개의 선택 항목 ‘(1) 전혀 아니다, (2) 아니다, (3) 알 수 없다, (4) 그렇다, (5) 매우 그렇다’가 제시되었다. 마지막 3단계 실험은 위에 사용된 후회와 추측 문장을 혼합한 44개의 문장에 대한 실험으로 ‘다음은 추측문장입니까? 후회 문장입니까?라는 지시문과 함께 5개의 선택항목인 ‘(1) 정확한 추측, (2) 추측, (3) 모호하다, (4) 후회, (5) 정확한 후회’가 제시되었다. 각 단계의 실험에서 실험자료는 순서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무작위로 섞어 제시되었다. 또한 3단계 실험에서 후회와 추측문장이 어떤 순서로 배치되었는가에 대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고 각 문장에 대한 평가는 청취자의 지각에 의존하게 하였다.
지각실험에는 경남과 창원 지역에 거주하는 20대 한국어 원어민화자인 남녀 대학생 30명(남: 13명, 여: 17명)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모두 한국어 청취와 동형다의 의미 변별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며 자발적으로 실험에 임하였다. 실험 전 연구목적을 설명하고 두 문장의 의미 분별력을 확인하였는데, 참여자들은 모두 표준어 경계성조 억양에 의존하여 ‘-(으)ㄹ걸’의 두 의미를 바르게 구별하였고 발화에서도 표준어화자처럼 오름과 내림 억양으로 추측과 후회를 구별 발화하였다. 즉 표준어 화자의 발화를 오역하거나 그와 다른 억양으로 산출하는 경우는 보이지 않았다. 실험 참여자들에게는 소정의 사례비가 지급되었다.
지각실험은 Praat script MFC Experiment를 사용하여 개인별로 실시하였다. 각 참여자들은 Praat script MFC Experiment가 실행된 모니터 앞에 앉아 실험자료를 한 문장씩 들으면서 문장의 운율 정보만으로 위에 제시된 5개의 항목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의미판별 실험을 수행하였다. 선택은 정해진 시간 내에 행해지는 강제 선택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 각 문장을 반복 청취하여 선택할 수 있게 하였다. 이는 청자가 운율정보를 잘 인지하고 숙지하여 의미를 판별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반복 청취(replay 버튼)는 20번까지로 제한하였다. 피험자가 5개의 항목 중 하나를 선택하면 다음 문장으로 자동으로 이동된다. 선택에 걸리는 시간도 동시에 측정되나 시간은 본 연구의 분석 대상이 되지 않았다. 실험 참여자들은 3단계로 진행된 실험에서 총 88문장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였다. 실험은 하루 동안 진행되었으며 약 10–15분이 소요되었다. 필요한 경우 각 단계 사이에 휴식을 취하게 하였다.
4. 결과
추측으로 발화된 문장은 그림 1처럼 경계 성조가 오름조인 H%로 실현되며 경계음절의 평균 음높이는 선행음절의 평균 음높이보다 높게 실현되었다. 이러한 음성 환경에서 경계음절의 평균 음높이만을 조절한 실험문장을 원어민화자들이 어떤 양상으로 지각했는지 그 결과는 그림 5와 그림 6에 제시되었다. 그림 5는 음높이별 지각평점을, 그림 6은 음높이별 지각빈도를 나타내는데 농도가 짙을수록 빈도수가 높다. 그림 5와 그림 6에서 세로축은 지각평가 항목을, 가로축은 선행음절과 경계음절 간 음높이 차이를 –5 Qt–15 Qt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각 그래프에서 ‘▲’는 원 자료에 대한 지각평가 결과를 나타낸다.
그림 5의 전체적 결과를 살펴보면 선행음절과 경계음절의 평균 음높이 차가 없는 0 Qt을 기준으로 양의 방향으로 클수록 매우 추측인 (5)에, 음의 방향으로 작아질수록 전혀 추측 아님인 (1)에 가까워지고 있다. 즉 경계성조의 위치가 선행음절보다 높을수록 매우 추측으로, 낮아질수록 전혀 추측 아님으로 지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매우 추측인 (5)에 가장 가까운 지점은 음높이 차가 14 Qt으로 평점 4.83이며, 15 Qt의 평점은 4.77, 원본에 대한 지각평점은 4.73이다. 그 반면 전혀 추측 아님인 (1)에 근접한 지점은 –5 Qt으로 평점은 1.43이다. 그리고 모호함인 (3)에 가장 근접한 지점은 1 Qt과 0 Qt으로 평점은 각각 3.07과 2.63이다. 즉 선행음절과 경계음절의 음높이 차가 ‘0’에 가까울수록 판별이 어려워짐을 알 수 있다. 7 Qt 이상에서는 부분적으로 음높이차와 지각평점이 정비례하지 않는 경향도 보이나 평점은 모두 (4) 이상으로 추측 또는 매우 추측으로 지각되었다.
따라서 추측으로 발화된 모든 문장의 경계성조의 형태가 동일한 오름조인 H%로 고정되었지만 선행음절과의 음높이 차이에 따라 청지각적 판별은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경계성조가 선행음절보다 높은 음역대에 위치할수록 추측의 의미가 뚜렷해지며 낮은 음역대에 위치할수록 추측의 의미가 약해짐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경향은 그림 6의 빈도수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그림 6에서도 세로축은 지각평점을 가로축은 음높이 차이를 나타낸다. 그리고 색의 농도는 빈도수를 나타내는데 색이 짙을수록 빈도수가 높고, 색이 옅을수록 빈도수가 낮다.
그림을 살펴보면 가로축의 음높이 차가 양의 방향으로 커질수록 지각평점이 (4)와 (5)에 집중됨을 알 수 있는데 음높이 차가 10 Qt 이상이면 (5)에, 1 Qt–8 Qt은 (4)에 집중되어 있다. 그 반면 음높이 차가 음의 방향으로 커질수록 평점은 (1)과 (2)에 집중된다. 음높이 차가 –5 Qt– –4 Qt은 (1)에, –3 Qt– –1 Qt은 (2)에 빈도가 집중되어 있다. 또한 두 음절의 음높이 차가 정확히 0 Qt인 경우 ‘알 수 없음(3)’으로 지각한 빈도가 가장 높다. 즉 두 음절의 평균 음높이 차가 없는 0 Qt을 기준으로 0 Qt 이상이면 추측으로, 0 Qt 이하이면 추측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는 빈도가 증가한다. 이상의 결과를 보면 평가자들은 경계음절과 선행음절의 음높이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함을 알 수 있다.
지각평점과 음높이 차이의 관련성을 살펴보고자 상관분석(Spearman’s rho)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는 표 2에 제시되었는데 두 변수 간 상관성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r=.812, p<.001).
후회로 발화된 문장의 경계성조는 그림 2처럼 내림조인 L%로 생성되었고 선행음절보다 낮은 음역대에 위치한다. 동일한 음성 환경에서 경계음절의 평균 음높이만을 조절한 실험문장을 원어민 화자들이 어떤 양상으로 지각했는지의 결과는 그림 7과 그림 8에 제시되었다. 그림 7 음높이별 지각평점을, 그림 8은 음높이별 지각빈도를 나타낸다. 그림 7과 그림 8에서도 세로축은 지각평점을, 가로축은 선행음절과 경계음절의 음높이 차를 –10 Qt–10 Qt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는 원 자료에 대한 지각평과 결과를 나타낸다.
우선 그림 7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우하향의 형태를 띤다. 즉 선행음절과 경계음절 간 평균 음높이 차가 없는 0 Qt을 기준으로 음의 방향으로 낮아질수록 매우 후회(5)로, 양의 방향으로 높아질수록 전혀 후회 아님(1)으로 지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원본에 대한 지각 평점이 4.80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음높이 차가 –10 Qt인 지점 역시 평점 4.77로 거의 모든 피험자가 매우 후회(5)로 지각하였다. 그 반면 전혀 후회 아님(1)에 가장 근접한 지점은 두 음절의 음높이 차가 10 Qt인 지점으로 지각 평점은 1.40이다. 또한 두 음절의 음높이 차이가 –1 Qt인 지점에서 3.30의 평점으로 알 수 없음(3)에 가장 근접하였으며 0 Qt의 지각 평점은 2.53, –2 Qt은 3.50으로 두 음높이 차가 0에 가까울수록 모호함인 (3)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두 음절의 음높이 차가 1 Qt 이상인 경우, 즉 경계음절의 음높이가 선행음절보다 높게 실현된 경우는 모든 평점이 (1)과 (2) 사이로 후회 아님으로 지각되었다.
그림 8에서도 유사한 경향을 관찰할 수 있다. 가로축의 음높이 차가 음의 방향으로 커질수록 지각 평점이 (4)와 (5)에 집중되는데 음높이 차가 –6 Qt–10 Qt은 (5)에, –2 Qt– –4 Qt은 (4)에 집중되어 있다. 이와 달리 음높이 차가 양의 방향으로 커질수록 (1)과 (2)의 빈도수가 증가하는데 6 Qt–10 Qt은 (1)에, 0 Qt–5 Qt은 (2)에 빈도가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음높이 차가 0에 가까운 –1 Qt에서 모호함으로 지각된 빈도수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따라서 후회로 발화된 문장 또한 경계성조 형태가 내림조인 L%로 고정되었지만 선행음절과 경계음절의 음높이 차이에 따라 다양한 청지각적 판별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두 음절의 음높이 차가 0 Qt과 –1 Qt을 기준으로 그 이하이면 후회로, 그 이상이면 후회가 아닌 것으로 지각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 경계음절과 선행음절의 음높이 차이에 따라 지각평가 결과가 영향을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각과 음높이 차이와의 관련성을 살펴보기 위해 상관분석(Spearman‘s rho)을 실시하였다. 표 3의 분석 결과를 보면 두 변수 간 상관성은 높은 편이다(r=–.626, p<.001).
지금까지 추측과 후회로 발화된 문장에서 선행음절과 경계음절의 음높이 차이의 변화가 지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경계성조 형태와 무관하게 경계음절이 선행음절보다 높으면 추측으로, 낮으면 추측이 아닌 것으로, 그리고 경계음절이 선행음절보다 낮으면 후회로, 높으면 후회가 아닌 것으로 지각하는 비율이 높았다. 본 장에서는 이런 경향이 추측과 후회의 이분법적 판별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즉 한 문장에 대한 추측과 후회의 의미판별이 경계성조의 형태가 아닌 선행음절과 경계음절의 음높이 차이만으로도 가능한지 조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1단계와 2단계 실험에서 추측이나 후회가 아닌 것으로 지각된 문장들이 어떤 의미로 판별되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상기한 바와 같이 실험자료는 1단계와 2단계 실험에 사용된 각각의 22문장을 혼합한 44문장이며 청취문장에 대한 판단은 (1) 정확한 추측, (2) 추측, (3) 모호함, (4) 후회, (5) 정확한 후회 중 하나로 판별된다. 실험 결과는 그림 9에 제시되었다.
결과를 살펴보면 추측으로 발화된 문장과 후회로 발화된 문장 모두 지각평가 결과는 동일한 우하향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경계성조에 상관없이 경계음절의 평균 음높이가 선행음절보다 높으면 추측, 낮으면 후회로 지각되는 경향을 관찰할 수 있다. 즉 두 음높이 차가 양의 방향으로 클수록 추측(1, 2번)으로, 음의 방향으로 클수록 후회(4번, 5번)로 지각된다. 이런 결과는 해당 문장의 발화의도나 경계성조 형태에 상관없이 두 음절의 음높이 차이만으로도 ‘-(으)ㄹ걸’의 이분법적 의미 판별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아래의 표 4는 경계와 선행음절의 평균 음높이 차이의 구간 별 지각평가 결과인데 이러한 경향이 더 잘 나타난다.
추측 | 후회 | 합계 | ||
---|---|---|---|---|
1 Qt–10 Qt | 추측 | 92.08% (442/480) | – | 83.33% (650/780) |
후회 | 69.3% (208/300) | |||
–1 Qt– –10 Qt | 추측 | – | 88% (132/150) | 90% (432/480) |
후회 | 90.9% (300/330) |
결과를 보면 경계음절이 선행음절보다 높게 실현된 문장(1 Qt 이상)은 추측 480문장과 후회 300문장이다. 이중 추측문장의 약 92%, 후회문장의 69.3%가 추측(추측 또는 정확한 추측)으로 지각되어 전체 83.3%에 달한다. 그 반면 경계음절이 선행음절보다 낮게 실현된 추측과 후회의 문장(–1 Qt– –10 Qt)은 각각 150문장과 330문장인데 이 중 추측의 88%, 후회의 90.9%가 후회(후회 또는 정확한 후회)로 인지되었으며 이는 전체 약 90%에 해당한다. 경계음절이 선행음절보다 높은 모든 문장이 추측으로, 낮은 문장이 모두 후회로 지각된 것은 아니지만 절대다수에 문장이 마지막 두 음절의 음높이 차이로 의미가 판별되고 있다.
또한 그림 9에서 경계음절과 선행음절의 음높이 차가 동일한 지점의 지각평점을 보면 추측문장의 평점이 후회문장보다 양 극단에 더 가까움을 알 수 있다. 이는 후회 문장에서 선행음절 /올/이 추측보다 높은 음역대에 위치하기 때문에 경계음절의 음높이를 높일수록 부자연스러운 음이 생성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문장의 비율은 전체적으로 높지 않다.
그리고 1단계 추측문장 평가에서 추측으로 지각되지 않은 154문장 중 경계음절이 선행음절보다 낮은 문장은 123문장이며 이 중 90.24%(111/123)는 후회로 지각되었다. 2단계 실험에서 후회로 지각되지 않은 문장 280문장 중 경계음절이 선행음절보다 높은 문장은 245문장이며 이 중 80%(196/245)가 추측으로 지각되었다. 결과적으로 경계성조 유형보다는 경계음절과 선행음절 간 음높이 차가 지각에 더 큰 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다.
경계성조와 음높이 차이 중 지각에 미치는 상대적 영향력을 살펴보기 위해 지각판단을 종속변수로 경계성조와 음높이 차를 독립변수로 한 이항 로지스틱 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 이항 로지스틱 회귀분석을 위해 5항으로 된 지각판단에서 모호함을 제외하고 정확한 추측과 추측을 묶어 0으로, 정확한 후회와 후회를 묶어 1로 지정하였다. 경계성조는 그 발화 형태에 따라 오름과 내림의 두 그룹으로, 음높이 차는 1 Qt 이상, 0 Qt, 1 Qt 이하의 세 그룹으로 상정하였다. 결과는 표 5에 제시되었다.
B | SE | Wald | 자유도 | 유의 확률 | 승산비 [Exp(B)] | |
---|---|---|---|---|---|---|
경계성조 | .117 | .265 | .194 | 1 | .660 | 1.124 |
음높이차 | 5.335 | .264 | 407.577 | 1 | .000 | 207.422 |
상수항 | –2.968 | .198 | 224.216 | 1 | .000 | .051 |
결과를 살펴보면 경계성조와 음높이 차이 중 ‘-(으)ㄹ걸’의 의미 판별에 유의미한 변수는 음높이차(p<.001)이다. 그리고 승산비값에서 알 수 있듯이 상대적 영향력 또한 음높이차(OR= 207.422, β=5.335)가 경계성조(OR=1.014, β=.117)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는 후회와 추측의 의미 변별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경계성조보다는 경계음절과 선행음절 간 피치편차에 의해 더 명확히 지각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5. 결론
본 연구는 경계성조 형태가 ‘-(으)ㄹ걸’의 의미를 변별하는 유일한 운율변수가 아닐 수 있다는 가정하에, ‘-(으)ㄹ걸’의 마지막 두 음절 간 음높이차가 경계성조 형태와 어떤 양상으로 상호작용하는지 지각실험을 통해 조사하였다. 이를 위해 표준 한국어원어민 화자가 추측과 후회로 발화한 두 문장의 경계성조 형태를 추측의 오름과 후회의 내림으로 고정한 채 그 음높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한 실험문장을 바탕으로 지각실험을 실시하였다.
지각실험 자료는 추측문장의 경계음절의 음높이를 선행음절과 –5 Qt–15 Qt 차이로 조절한 21문장에 원 자료를 더한 22문장과 후회문장의 경계성조의 음높이를 선행음절과 –10 Qt–10 Qt으로 조절한 21문장에 원 자료를 더한 22문장, 그리고 추측과 후 회문장을 혼합한 44문장으로 모두 88문장이다.
지각실험은 이들 각각의 실험자료를 별개로 3단계로 진행되었다. 실험 참여자들은 청취하는 문장이 얼마나 추측(1단계) 또는 후회(2단계)에 가깝게 들리는지와, 추측 또는 후회(3단계) 중 어떤 문장으로 지각되는지를 5단계로 평가하였다. 지각실험에는 30명의 한국어 원어민화자가 참여하였다.
지각실험 결과 추측과 후회로 발화된 문장의 경계성조 H%와 L%의 형태와는 상관없이 경계성조의 평균 음높이가 선행음절보다 높으면 추측으로, 낮으면 후회로 지각되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다. 즉 경계성조의 평균음높이가 양의 방향으로 커질수록 추측으로, 음의 방향으로 작아질수록 후회로 지각되었다. 추측과 후회로 발화된 모든 문장의 경계성조 형태가 동일한 H% 또는 L%로 고정되었으나 선행음절과의 음높이 차이에 따라 청지각적 판별은 다르게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경계음절과 선행음절의 평균 음높이 차가 0 Qt에 가까울수록 의미판별에 혼란이 야기됨이 관찰되었다.
따라서 경계성조의 형태만으로는 ‘-(으)ㄹ걸’ 두 의미를 명확히 분별할 수 없는 경우가 존재하며 이 경우 경계음절과 선행음절의 음높이 차이에 의해 두 의미가 더 명확히 판별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으)ㄹ걸’의 두 의미의 생성과 지각에는 경계성조의 형태와 더불어 그 음높이와 선행음절 음높이와의 상관성이 보다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며 이 상관성 안에서 보다 정확한 의미 해석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제한된 자료를 대상으로 하였고 경계성조의 형태와 선행 및 경계음절의 음높이 차의 상관성이 다각도로 모색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결과의 일반화를 위해서는 후속연구를 통해 방법론적 한계가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