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음운의 음성적 실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운율적 위치이다. 같은 음운이더라도 발화 내에서 어떤 운율적 위치에 놓이는지에 따라 음성적으로 다르게 실현될 수 있다. 특히 운율 단위의 경계는 음성적 변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운율 단위 초에 놓인 음운은 음성적으로 더 강하게 실현되는 반면 운율 단위 말에 놓인 음운은 음성적으로 더 약하게 실현되는 경향이 여러 언어에서 관찰되었다(Cho & Jun, 2000; Fougeron & Keating, 1997; Keating et al., 2004 등).
이러한 특징은 한국어에서도 보고되었는데, Lee(2021)에서는 운율 단위 내 위치에 따른 음운의 음성적 변이 양상을 살펴보았다. 음운의 지속시간을 통해 시간(temporal) 구조를, 모음 포먼트 값의 실현을 통해 공간(spectral) 구조를 관찰한 결과, 운율적 위치는 음운의 시간 구조와 공간 구조에 모두 영향을 주었다. 그 중 /ㅏ, ㅣ, ㅗ/ 세 모음이 정규화된 F1×F2 음향 공간에서 실현된 위치를 살펴본 결과는 그림 1과 같다.
그림 11의 왼쪽은 각각의 운율적 환경에서 세 극점 모음의 평균적 위치와 모음 공간의 크기를 보여준다. 각 모음이 음운구 초에서는 모음 공간의 중심(+)에서 멀게 실현되어 공간적으로 강화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음운구 말에서는 모음 공간의 중심에 가깝게 실현되어 공간적으로 약화된 모습을 보인다. 모음이 분포한 정도를 수치화하여 운율적 위치의 효과를 살펴보았을 때, 그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였다(초>중,말).
그림 1의 오른쪽은 왼쪽과 동일한 환경에서 전체 개별 토큰의 결과를 모두 나타낸다. 그림 1의 두 그림을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바로 운율적 위치에 따라 개별 토큰들이 분포하는 모습이다. 음성적 강화가 일어나는 음운구 초에서는 토큰들이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에 밀집하여 분포하는 반면, 음성적 약화가 일어나는 음운구 중·말에서는 토큰들이 넓은 범위에 분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세 모음에서 모두 관찰된다. 이를 통해 음운의 환경에 따라 음성적 변이가 나타날 때 평균적인 경향성에만 차이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공간 구조 전반에서 분포 범위가 영향을 받는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발견에서 착안하여 이 연구에서는 이중모음 /ㅛ/를 대상으로 언어학적 환경에 따른 음성적 변이와 모음 분포의 연관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이중모음 /ㅛ/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한국어 모음의 발음 변이를 탐구한 연구 중 이중모음을 대상으로 수행된 연구는 상대적으로 수가 부족하다. 단모음의 음성적 변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 있는 반면(Jang et al., 2015; Kang & Kong, 2016; Oh, 2016 등), 이중모음은 상대적으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는 /ㅛ/가 내용어와 기능어에서 모두 빈번하게 사용되는 음운이기 때문이다. /ㅛ/를 포함하는 보조사 {요}는 구어에서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는 대표적인 기능어이며, 명사, 부사 등 내용어에서도 적지 않은 빈도로 출현한다. 따라서 어휘 부류(word class)의 효과를 함께 고려하기에 적합하다. 마지막으로 /ㅛ/는 발화 내에서 출현하는 운율적 위치가 다양하다. 이는 두 번째 이유와도 관련되는데, 어휘 부류와 운율적 위치는 밀접한 관련을 가지므로 내용어와 기능어에서 사용될 때 각각 나타나는 운율적 위치가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 /ㅛ/는 운율적 위치와 어휘 부류를 고려하여 음성적 변이 양상을 살펴보기에 적합한 연구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어 이중모음의 발음 연구는 주로 활음 탈락의 측면에서 다루어져 왔다. 이중모음은 음성적으로 활음과 단모음의 연쇄로 볼 수 있는데(Shin, 2014), 구어에서는 조음 동작의 변화 속도가 빠른 활음이 탈락하여 ‘뭐’[머], ‘되는’[대는]처럼 단모음화되는 현상이 자주 발견된다. 그러나 활음 탈락은 주로 /w/계 이중모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j/계 이중모음은 /ㅖ/를 제외하면 거의 활음 탈락이 나타나지 않는다(Cha & Ahn, 2004).
이러한 이유로 /j/계 이중모음은 상대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그 중 /ㅛ/는 보조사 {요}의 높은 사용 빈도와 특징적인 발음 실현으로 인해 일부 연구에서 다루어진 바 있다(Kang, 2009; Lee, 2022; Yoon, 2020). Kang(2009)은 실험을 통해 /ㅛ/의 발음과 어휘 부류의 상관관계를 탐구한 연구로, 내용어(명사) /ㅛ/와 기능어(보조사) /ㅛ/의 발음을 한국어 화‧청자들이 어떻게 산출 및 지각하는지 살펴보았다. 산출 실험 결과, 기능어 /ㅛ/는 내용어에 비하여 F1값과 F2값이 모두 더 높게 나타났다. 지각적으로도 차이가 있었는데, 내용어 /ㅛ/를 기능어로 오지각하는 경우는 종종 나타났지만 반대의 경우는 드물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Kang(2009)은 보조사 {요}의 발음이 음성적으로 약화됨을 주장하였다.
Yoon(2020)은 서울코퍼스를 이용하여 보조사 {요}가 화자 특성에 따라 어떠한 발음 양상을 보이는지 탐구하였다. 그 결과, 보조사 {요}는 자유 발화에서 표준발음형인 [요]보다는 변이형인 [여]로 실현되는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을 확인하였다([요]: 12%, [여]: 84%). 성별과 연령대 중 성별만이 발음형 실현에 있어 유의미한 효과를 보였는데, 남성보다 여성이 [여]로 발음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Lee(2022)는 10대 표준어 화자들이 보조사 {요}를 발음하는 데 있어 언어 외적·내적 요인들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 연구이다. 종결 어미나 연결 어미에 {요}가 결합한 용언형보다는 체언이나 부사어에 {요}가 결합한 비용언형일 때 [여]로 발음되는 비율이 더 높았고, 음운구가 8음절 이상일 때, 그리고 선행 모음이 /ㅏ/보다는 /ㅓ/일 때 [여]로 발음되는 비율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화자의 성별, 문형, 선행 모음의 전‧후설성은 {요}의 발음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상의 선행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보조사 {요}는 구어에서 변이형인 [여]로 발음되는 경향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2 기존의 연구들은 어떠한 요인이 보조사 {요}의 발음에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는 데 연구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연구에서는 이중모음 /ㅛ/를 대상으로 하여 운율적 위치와 어휘 부류에 따라 음운이 음성적으로 변이하는 양상을 살펴보고, 음성적 변이와 분포 범위의 연관성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선행 연구들과 차이가 있다.
본고는 자유발화 말뭉치를 분석하여 이중모음 /ㅛ/의 발음이 언어학적 환경에 따라 어떠한 발음형으로 실현되는지를 먼저 살펴본다. 발음형의 빈도 분석을 통해 /ㅛ/의 발음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파악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음향 분석을 수행하여 /ㅛ/의 핵모음이 어떠한 공간적 변이 양상을 보이는지 살펴보고, 모음의 공간적 변이와 분포 범위가 갖는 연관성에 대하여 검토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구어에서 나타나는 한국어 /ㅛ/의 발음 실현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2. 연구 방법
자연스러운 한국어 발화에서 나타나는 /ㅛ/를 관찰하기 위하여 본고는 ‘한국어 자연발화 음성 코퍼스’(이하 ‘서울코퍼스’)를 분석에 이용하였다. 서울코퍼스는 한국어 화자들이 다양한 주제로 자유롭게 발화한 음성을 수집한 대규모 말뭉치로, 서울·경기·인천 지역에서 출생 및 거주 중인 화자들을 대상으로 수집되었으며, 화자의 연령과 성별이 고르게 구성되어 있다(Yun et al., 2015). 이 연구에서는 화자와 관련된 언어외적 요인의 효과를 최대한 통제하기 위하여 서울코퍼스 전체 자료 중 20–30대 여성 화자들의 음성을 분석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총 10명의 음성이 분석 대상에 포함되었고, 이는 10시간 49분 24초 분량이었다.
서울코퍼스는 음운, 어절, 발화 단위에 대하여 철자 전사와 발음 전사가 되어 있다. 서울코퍼스에서 제공하는 텍스트그리드 파일은 총 7개의 층렬로 구성되어 있는데, 순서대로 ‘음운(로마자)’, ‘발음형 어절(한글)’, ‘발음형 어절(로마자)’, ‘발음형 발화(한글)’, ‘철자형 어절(한글)’, ‘철자형 어절(로마자)’, ‘철자형 발화(한글)’이다. 이 중 ‘철자형 어절’에서 음운 /ㅛ/를 포함하는 토큰이 ‘발음형 어절’ 층렬에서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분석하면 /ㅛ/의 발음형을 파악할 수 있다.3
서울코퍼스를 이용하여 보조사 {요}의 음성 변이형을 연구한 Yoon(2020)에서는 {요}의 발음형 중 96.4%는 [요] 혹은 [여]로 실현되며, 오직 3.6%만이 기타 음운에 해당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4 즉, /ㅛ/는 거의 대부분 [ㅛ]나 [ㅕ]로 실현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음운 /ㅛ/가 [ㅛ] 혹은 [ㅕ]로 발음된 토큰을 대상으로 한정하였다.
수집된 /ㅛ/의 토큰들에 대하여 언어학적 주석을 수행하였는데, 어절 내 음절 위치와 어휘 부류를 파악하였다. 어절 내 음절 위치 분석은 운율적 위치의 효과를 파악하기 위하여 수행하였다. 엄밀히 말해 어절은 통사 단위이기 때문에 운율적 위치의 효과를 살펴보기에 한계점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어의 어절은 운율 단위인 음운구와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아 어절 정보를 활용하였다. 어절 초는 운율적으로 음운구 초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고 어절 말은 음운구 말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하에 연구를 진행하였다. /ㅛ/를 포함하는 음절이 각 어절 내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에 따라 단음절, 어절 초, 어절 중, 어절 말 네 가지로 구분하였다.
다음으로는 어휘 부류를 분석하였다. 연구자가 직접 각 토큰을 확인하여 /ㅛ/가 내용어에서 사용되었는지 기능어에서 사용되었는지를 파악하였다. /ㅛ/를 포함한 어절이 명사, 대명사, 수사, 동사 어간, 형용사 어간, 관형사에서 사용되었다면 내용어로 분류하였으며 어미, 조사, 접사에서 사용되었다면 기능어로 분류하였다. 기능어로 분류된 /ㅛ/는 모두 보조사 {요}인 점이 특징적이었다.
이 연구에서는 음운 /ㅛ/가 [ㅛ] 혹은 [ㅕ]로 발음되었는지 범주적으로 구분하는 것 외에도 음향적으로 어떠한 특성을 보이는지 함께 살펴보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중모음은 음성적으로 활음과 단모음의 연쇄로 구성되는데(Shin, 2014), /j/계 이중모음은 활음이 잘 탈락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토대로 본고에서는 활음보다는 핵모음에서 /ㅛ/의 발음 변이 양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핵모음의 포먼트 값을 측정하여 /ㅛ/의 공간적(spectral) 변이 양상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모음의 포먼트 값은 음성 분석 프로그램인 Praat(ver. 6.1.40)을 이용하여 측정하였다. /ㅛ/가 시작하는 지점(0%)에서부터 끝나는 지점(100%)까지 중 75%에 해당하는 시간적 위치에서 F1, F2값을 측정하였다. 이 위치가 이중모음 핵모음의 중간 지점에 가장 근접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다양한 환경에서 변이하는 /ㅛ/의 음가 차이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포먼트 값이 측정되지 않은 3개 토큰은 분석에서 제외하였다.
측정한 F1, F2값에 대해서는 화자 간 개인 차를 최대한 배제하기 위하여 정규화(normalization)를 수행하였다. R 플랫폼의 ‘phonR’ 패키지에서 제공하는 Lobanov의 z-score 변환 방식을 이용하여 개별 화자에 대해 정규화를 수행하였으며, 이를 통해 얻은 F1, F2값을 이후 분석에 이용하였다(McCloy, 2015).
3. /ㅛ/의 출현 빈도와 발음 변이 양상
서울코퍼스 20–30대 여성 화자의 전체 발화를 분석한 결과, 분석 대상에 포함된 /ㅛ/의 토큰은 총 3,565개였다. 이 중 20대 화자가 발화한 토큰이 1,631개, 30대 화자의 토큰이 1,934개였다. 이 장에서는 언어학적 주석을 바탕으로 각 환경에서 나타나는 /ㅛ/의 출현 빈도와 발음형의 실현 양상을 살펴본 결과를 제시한다.
먼저, 운율 단위 내 위치에 따라 /ㅛ/가 어떠한 출현 빈도를 보이는지 살펴보았다. 운율적 위치는 서울코퍼스에서 제공하는 어절 단위를 기준으로 분석하였는데, 1음절이 하나의 어절을 이루는 단음절어, /ㅛ/를 포함한 음절이 어절 초에 놓이는 경우, 어절 중에 놓이는 경우, 어절 말에 놓이는 경우까지 총 4가지 환경으로 구분하였다. 단음절은 8회(0.2%), 어절 초는 314회(8.8%), 어절 중은 254회(7.1%), 어절 말은 2,989회(83.8%)로, /ㅛ/는 어절 말 음절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가장 빈번하였고, 어절 초 음절과 어절 중 음절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토큰이 관찰되었다.
어절 말 음절에서 /ㅛ/의 높은 빈도는 어휘 부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각 위치에서 /ㅛ/의 어휘 부류를 분석해 보면 표 1과 같다.
내용어 | 기능어 | |
---|---|---|
단음절 | 8 | - |
어절 초 | 314 | - |
어절 중 | 253 | 1 |
어절 말 | 217 | 2,772 |
합계 | 792 | 2,773 |
단음절, 어절 초 위치에서 나타나는 /ㅛ/는 모두 내용어였다. 어절 중 위치에서도 기능어에서 나타난 1회를 제외한 253회가 모두 내용어에 해당하였다.5 특수한 경우인 1개 토큰을 제외하면, 단음절, 어절 초, 어절 중 위치에서 나타나는 /ㅛ/는 모두 내용어로 분류되었다. 한편, 어절 말 위치에서는 반대의 경향성이 나타났다. 오직 7.3%(217회)를 제외한 나머지(92.7%, 2,772회)는 모두 기능어였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한국어에서 내용어와 기능어의 출현 위치 차이를 반영한다. 교착어인 한국어에서 일반적인 어절은 ‘내용어+내용어’ 혹은 ‘내용어+기능어’로 구성된다. 따라서 어절 초에는 항상 내용어만 놓일 수 있는 반면, 어절 중이나 어절 말에는 내용어나 기능어가 모두 놓일 수 있다. 표 1의 결과는 이러한 한국어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어절 초나 어절 중 위치에서의 /ㅛ/는 내용어이지만, 어절 말 위치에서 /ㅛ/는 대부분 기능어의 일부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각 환경에서 /ㅛ/의 발음형이 [ㅛ]와 [ㅕ] 중 무엇으로 실현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표 2에서 /ㅛ/의 발음형은 어절 말 음절에서 나타나는 경우와 그 외 환경에서 나타나는 경우에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단음절, 어절 초, 어절 중 음절에 놓인 /ㅛ/는 모두 [ㅛ]로 발음되었다. 그러나 어절 말 음절에 놓인 /ㅛ/의 발음형으로는 [ㅛ]와 [ㅕ]가 모두 나타나는데, 이 발음형의 차이는 어휘 부류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어에 포함된 /ㅛ/는 모든 토큰이 [ㅛ]로 발음된 반면, 기능어에 포함되었을 때는 무려 94%가 [ㅕ]로 발음되었다.
내용어 | 기능어 | |||
---|---|---|---|---|
[ㅛ] | [ㅕ] | [ㅛ] | [ㅕ] | |
단음절 | 8 | - | - | - |
어절 초 | 314 | - | - | - |
어절 중 | 253 | - | 1 | - |
어절 말 | 217 | - | 165 | 2,607 |
합계 | 792 | - | 166 | 2,607 |
지금까지 /ㅛ/가 운율적 위치와 어휘 부류에 따라 어떠한 출현 빈도를 보이는지 살펴보고, 발음 전사 정보를 토대로 각 환경에서 발음형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검토하였다. 그 결과 단음절, 어절 초, 어절 중 위치에서 나타나는 /ㅛ/는 모두 내용어였으며, 이 때 발음형은 [ㅛ]로만 실현되었다. 반면 어절 말 위치에서의 /ㅛ/는 내용어인 경우와 기능어인 경우가 모두 나타났는데, 내용어의 경우에는 발음형이 모두 [ㅛ]로 실현되었고, 기능어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ㅕ]로 발음되었다.
/ㅛ/의 발음 변이는 어절 말 위치와 비(非)어절 말 위치에서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비어절 말, 즉, 단음절, 어절 초, 어절 중 위치에서는 어휘 부류가 내용어로 고정되어 있으며, 발음형 또한 [ㅛ]로 고정되어 비교적 단순한 실현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어절 말에서는 보다 복잡한 실현 양상을 보이는데, 내용어와 기능어가 모두 나타날 수 있으며, 기능어일 때는 [ㅛ]로 발음되기도 하고 [ㅕ]로 발음되기도 한다.
/ㅛ/의 발음 변이 양상을 보다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절 말 위치에서 각 환경에 따라 /ㅛ/의 음성적 실현 양상이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비교쌍에 대한 음성 분석을 수행할 것이다. 첫째, 어절 말의 기능어에서 나타난 토큰 중 발음형이 [ㅛ]인 경우와 [ㅕ]인 경우의 음성적 실현 양상을 비교할 것이다. 둘째, 어절 말에서 [ㅛ]로 실현된 토큰 중 내용어와 기능어의 음성적 실현 양상을 비교할 것이다. 다양한 환경에서의 음성적 실현 양상을 검토함으로써 /ㅛ/의 발음 변이 양상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4. 음성적 변이와 분포 범위의 연관성
이 장에서는 어절 말 위치에서 실현된 /ㅛ/의 토큰들에 대하여 더욱 세부적인 음성 분석을 수행하였다. 어절 말 위치에서는 내용어 토큰이 217개, 기능어 토큰이 2,772개였다. 이 중 내용어 217개는 발음형이 모두 [ㅛ]로 실현되었고, 기능어 중 165개는 [ㅛ]로, 2,607개는 [ㅕ]로 실현되었다.
먼저, 어절 말 위치에서 나타나는 기능어의 발음형이 [ㅛ]인 경우와 [ㅕ]인 경우에 음성적으로 어떠한 실현 양상을 보이는지 비교 분석해 보았다. 동일한 운율적 위치와 동일한 어휘 부류 내에서 청자가 발음형을 다른 음운으로 지각하였다면 어떠한 음성적 특징이 반영된 것인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ㅛ]로 실현된 토큰 165개와 [ㅕ]로 실현된 토큰 2,607개를 대상으로 F1과 F2값을 측정하였고, 이를 정규화하여 F1×F2 음향 공간에서 나타내었다.
그림 2는 음향 공간 내에서 어절 말 기능어 [ㅛ]와 [ㅕ]의 위치를 보여주는데, 평균값은 검정색 점으로, 개별적 토큰들은 빨간색/파란색 점으로 나타내었다. 검정 세모(▲)는 기능어 [ㅛ]의 평균값을, 검정 동그라미(●)는 기능어 [ㅕ]의 평균값을 의미한다. 이 두 점을 비교해 보면 발음형이 [ㅛ]일 때는 [ㅕ]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은 F1값과 작은 F2값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F1과 F2값에서 보이는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 확인하기 위하여 통계 검정을 수행하였다. 이때 F1, F2값은 정규 분포를 보이지 않으므로 Mann-Whitney U 검정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F1과 F2값 모두에서 통계적 유의성이 확인되었다. [ㅛ]의 F1값은 [ㅕ]의 F1에 비하여 유의미하게 작았으며(p<.001), [ㅛ]의 F2값은 [ㅕ]의 F2에 비하여 유의미하게 작았다(p>.05).
이어서 개별 토큰을 살펴보면, 빨간색 세모는 발음형 [ㅛ]의 개별 토큰들을 나타내고, 파란색 동그라미는 발음형 [ㅕ]의 개별 토큰들을 나타낸다. 개별 토큰들을 둘러싸고 있는 신뢰 타원(confidence ellipse)은 토큰의 분포 범위를 가늠하게 해 준다.6 신뢰 타원은 환경에 따라 선의 모양과 색깔이 다르게 표시되어 있는데, [ㅛ]의 신뢰 타원은 빨간색 실선으로, [ㅕ]는 파란색 점선으로 구분되어 있다. 기능어의 경우 [ㅕ]로 발음되는 것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토큰 수의 불균형은 존재하지만 [ㅛ]와 [ㅕ]의 분포 범위 자체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두 발음형의 신뢰 타원은 비슷한 범위에 걸쳐 비슷한 크기로 실현되고 있다. 기능어의 경우 발음형이 [ㅛ]로 실현되든 [ㅕ]로 실현되든 F1, F2값이 넓은 범위에 퍼져 있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발음형 [ㅛ]와 [ㅕ] 토큰의 분포 범위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위하여 모음의 산포(dispersion) 값을 측정하였다. 산포는 ‘F1×F2 음향 공간의 중심점으로부터 각 모음까지의 유클리드 거리’를 측정한 값으로(Burdin et al., 2014), 각 모음이 얼마나 분산되어 있는지를 나타낸다. [ㅛ]의 산포는 1.25(표준편차 0.66), [ㅕ]의 산포는 1.28(표준편차 0.71)로, 유사한 값을 가졌다. Mann-Whitney U 검정을 수행하였을 때, 예상한 대로 두 발음형의 산포 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p>.05).
지금까지 어절 말 위치에서 나타난 기능어에 대하여 발음형이 [ㅛ]와 [ㅕ]인 경우에 어떠한 음성적 실현 양상을 보이는지 비교해 보았다. [ㅛ]로 발음된 기능어는 [ㅕ]로 발음된 기능어에 비하여 작은 F1과 F2값을 가졌고, 그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이러한 포먼트 값의 차이는 두 발음형 간의 조음적 차이를 반영한다. 본고에서는 시간적으로 /ㅛ/의 핵모음의 중간에 근접할 것으로 생각되는 75% 지점에서 포먼트 값을 측정하였다. 따라서 그림 2의 결과는 /ㅛ/의 발음이 변이할 때 핵모음이 갖는 차이를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ㅛ]의 핵모음은 단모음 /ㅗ/와 유사한 음성적 특성을 지니지만, [ㅕ]의 핵모음은 /ㅗ/보다 원순성이 약화된 상태로 조음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ㅛ/의 변이형으로서 [ㅕ]가 모음 공간의 중심에 가깝게 실현되게 만드는 음성적 약화를 겪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리하면, 어절 말 위치의 기능어에서 나타난 /ㅛ/는 모두 보조사 {요}였다. 보조사 {요}는 대체로 표준 발음형인 [ㅛ]보다 조음적으로 약화된 상태로 실현되며, 이는 한국어 청자에게 음운 [ㅕ]로 지각된다.
다음으로 어절 말 위치에서 발음형이 [ㅛ]로 실현된 경우에 어휘 부류의 차이가 존재한다면 음성적으로 동질적인지, 혹은 차이를 보이는지 확인해 보았다. 이를 위해 내용어 217개와 기능어 165개를 대상으로 F1, F2값을 측정하였다. 그 결과를 정규화한 후 F1×F2 음향 공간에서 시각화하여 나타내면 그림 3과 같다.
그림 3은 어휘 부류에 따른 /ㅛ/의 공간적 실현 양상을 보여준다. 개별 토큰들은 점의 색깔과 모양으로 구분하였고, 평균값은 검정색 점으로 나타냈다. 먼저 평균값을 살펴보면, 검정 세모로 표시된 내용어 [ㅛ]와 검정 동그라미로 표시된 기능어 [ㅛ]의 평균값은 F1과 F2 모두 뚜렷한 차이 없이 겹쳐서 나타난다. 어휘 부류에 따른 F1과 F2값의 실현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Mann-Whitney U 검정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내용어와 기능어의 F1값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p>.05), 내용어와 기능어의 F2값 역시 통계적으로 다르지 않았다(p>.05).
그림 3에서 빨간색 세모는 내용어 [ㅛ]의 개별 토큰들을 나타내고, 파란색 동그라미는 기능어 [ㅛ]의 개별 토큰들을 나타낸다. 내용어 [ㅛ]의 신뢰 타원은 빨간색 실선으로, 기능어 [ㅛ]는 파란색 점선으로 구분되어 있다. 앞서 어휘 부류에 따른 평균적인 F1, F2값이 차이를 보이지 않았던 것과 달리, 개별적인 토큰의 분포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용어와 기능어에서 F2값 분포 범위는 비슷하지만, 기능어일 때 F1값이 내용어일 때에 비해 더 넓은 범위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파란색 점선으로 표시된 기능어의 신뢰 타원이 빨간색 실선으로 표시된 내용어의 신뢰 타원보다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더욱 정확한 비교를 위하여 산포 값을 구하여 개별 토큰의 분포 양상을 비교해 보았다. 내용어 [ㅛ]는 1.10(표준편차 0.59), 기능어 [ㅛ]는 1.25(표준편차 0.66)로, 기능어일 때 [ㅛ]의 산포가 더 큰 값을 가졌다. 이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Mann-Whitney U 검정을 수행한 결과, 내용어의 산포와 기능어의 산포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p<.05).
지금까지 /ㅛ/가 나타나는 운율적 위치가 동일하고(어절 말), 발음형 또한 동일한 경우에([ㅛ]) 내용어와 기능어의 음성적 실현 양상을 비교해 보았다. F1과 F2값의 평균적인 실현은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청자들은 해당 모음의 음운을 /ㅛ/로 동일하게 인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평균적인 음가는 유사하더라도 전체적인 공간적 분포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기능어에서 나타나는 /ㅛ/는 내용어의 /ㅛ/를 포괄하며 더 넓은 범위에서 실현되었다.
이처럼 내용어와 기능어에서 나타나는 개별 토큰들의 분포 범위 차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본고에서는 이를 어휘 부류와 조음적 명료도의 상관성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조음적 목표가 뚜렷할수록 개별 모음 토큰들은 음향 공간의 특정 지점에 밀집되어 나타날 것이고, 조음적 목표가 불분명할수록 개별 토큰들은 뚜렷한 패턴 없이 흩어져서 나타날 것이다.
내용어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어휘 항목으로, 유형 빈도가 높기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낮은 반면, 메시지와 관련된 주요 정보를 전달하여 의미 부담량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Corver & van Riemsdijk, 2001). 내용어는 문장의 주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화자는 청자에게 이를 잘 전달하기 위해 더욱 명료하게 조음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조음적 노력의 증가는 조음적 목표를 명확하게 만들며, 내용어 /ㅛ/의 토큰들은 음향 공간 내에서 매우 좁은 범위에 밀집하여 분포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한편, 기능어는 문법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어휘 항목으로, 높은 예측 가능성과 낮은 의미 부담량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Meunier & Espesser, 2011). 한국어의 보조사 {요}는 청자 존대의 기능을 담고 있는 문법 형태소이다. 보조사 {요}는 출현하는 위치가 운율 단위 끝으로 제한적이며 전달하는 의미 기능이 단순하여 음성적 정보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청자가 주변 맥락을 통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화자의 조음적 부담을 줄여준다. 조음적 노력의 감소로 인해 기능어에서 나타나는 /ㅛ/의 개별 토큰들은 명확한 조음적 목표를 두지 않고 넓은 범위에 걸쳐서 분포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중모음 /ㅛ/가 출현하는 위치와 발음형이 동일할 때, 어휘 부류가 달라지더라도 모음 공간에서의 평균적 위치는 변화하지는 않았다. 다만 개별적인 값들이 분포하는 범위에서는 차이가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어휘 부류가 모음의 평균적인 음가 실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개별 값들의 분포 양상에는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5. 결론
이 연구는 이중모음 /ㅛ/가 운율적 위치와 어휘 부류에 따라 어떠한 발음 변이 양상을 보이는지 관찰하고, 음성적 변이와 분포 범위의 연관성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ㅛ/의 발음이 갖는 특징을 다각도로 논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대규모 말뭉치를 이용하여 다양한 환경에서 나타나는 /ㅛ/를 관찰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ㅛ/는 운율적 위치에 따라 어휘 부류와 발음형의 실현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단음절, 어절 초, 어절 중 음절에 나타나는 /ㅛ/는 모두 내용어에 해당하였으며, 이때 발음형은 [ㅛ]로만 실현되었다. 어절 말에서는 내용어와 기능어가 모두 나타났는데, 내용어 /ㅛ/는 모두 [ㅛ]로 실현되지만 기능어 /ㅛ/는 대다수가 [ㅕ]로 실현되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둘째, 어절 말 위치에서 나타난 기능어 /ㅛ/의 발음형이 [ㅛ]로 실현된 경우와 [ㅕ]로 실현된 경우의 음성적 특성을 비교했을 때, [ㅕ]는 상대적으로 큰 F1, F2값을 보였다. 어절 말 기능어 /ㅛ/가 대부분 [ㅕ]로 발음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보조사 {요}의 발음은 조음적으로 원순성의 감소를 동반하는 음성적 약화가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셋째, /ㅛ/의 발음형이 [ㅛ]로 동일하고 어휘 부류 차이만 있는 경우의 음성적 실현 양상을 비교하였을 때, 평균적인 F1, F2값은 차이가 없었지만 개별 토큰의 분포 양상에서는 차이가 나타났다. 내용어 [ㅛ]의 좁은 분포는 높은 조음적 명료도를 반영하고, 기능어 [ㅛ]의 넓은 분포는 낮은 조음적 명료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모음의 음성적 변이를 논의한 기존의 연구들이 주로 평균적인 음성적 실현을 다루었던 것과 달리, 이 연구는 개별 값들의 분포 양상에 주목하여 /ㅛ/의 음성적 변이와 분포 범위의 연관성에 대하여 고찰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그 결과, 언어학적 환경이 모음의 평균적인 음가뿐만 아니라 분포 범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