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중세한국어에서 용언의 활용뿐 아니라 체언의 곡용, 그리고 형태소 내에서도 비교적 활발히 적용되던 모음조화(Han, 1996; Park, 2019)는 근대한국어를 거쳐 현대한국어로 넘어오면서 모음체계의 변화 등으로 인해 약화되고(Park, 2016) 그 적용 범위가 제한되어 현대한국어에서는 일부 어간의 활용과 의성의태어에서만 남아 있다고 보고된다. 그리고 용언 활용에서의 모음조화도 안정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변화를 겪고 있음이 Nam (1973)에서 제시된 이후, Kang(2002), Kang(2012), Kang(2016), Song & Yoo(2000), Yoo(2000) 등에서 보고되었다[이 외에 수도권을 제외한 방언에서 나타나는 모음조화에 대한 다수의 연구들로 Chung(1997), Kang(1996), Park(2003) 등이 있다]. 그리고 Ha(2022), Hong(2008), Jang(2020) 등에서는 말뭉치 등의 경험적 자료를 통해 구체적인 변이 현상을 보였다. 그 변이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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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ㅏ/-모음 어간은 ‘아’형 어미를 주로 취하나 ‘어’형 어미를 취하기도 한다. 어간 말에 자음군이 있거나 장애음이 있을 때 ‘어’형 어미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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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ㅗ/-모음 어간은 ‘아’형 어미만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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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불규칙 어간의 경우 단음절 /ㅗ/-모음 어간을 제외하면 모두 대체로 ‘어’형 어미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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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음절 종결 어미의 경우 그 외 어미에 비해 /ㅏ/-모음 어간에 ‘어’형으로 실현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 연구에서는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음성 말뭉치를 활용하여 이전의 연구에서 제시된 용언 활용에서의 모음조화 변이가 실제 발화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실제 발화 자료를 활용하여 비조화형의 발동(actuation)이 모음의 음운 감쇄 또는 과소 실현에 의해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검증한다. 또한변이의 양상을 음운/형태적 관점 및 사회언어학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기존의 주장들을 검증해 보고자 한다. 모음조화의 공시적 변이 혹은 통시적 변화에 대한 선행 연구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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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음적 관점: 종결어미가 발화 말 위치에서 음운 감쇄를 겪어 나타난다(Ha, 2022). 어간 모음과 어미 모음의 동시 조음이 어려움을 겪는 환경에서 비조화형이 더 자주 나타난다(Jang,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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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관점: 어간 모음의 변별력이 높아 (/ㅏ/-모음 어간) 조화형 어미 없이도 어간의 인식이 쉽게 되는 경우에는 종결어미의 형태가 (‘어’형으로) 통합되어 나타난다. 어미는 어간으로부터의 독립성이 강할수록 평준화의 영향을 받아 (‘어’형으로) 통합되어 나타난다(Kang, 2012, 2016).
다음 절에서는 말뭉치를 통한 분석의 과정과 결과를 제시한다. 결과는 /ㅏ/-모음 어간 위주로 어떤 음운/형태적 요소와 사회언어학적 요소들이 영향을 주었는지에 중점을 두어 기술할 것이다. /ㅗ/-모음 어간과 관련하여서는 말뭉치 분석의 결과와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실행된 인지 실험을 3절에서 제시한다. 그리고 모든 결과를 4절에서 논의하고 5절에서는 후속연구를 제안하며 마무리한다.
2. 말뭉치 분석
이 연구에서 사용한 말뭉치는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일상 대화 음성 말뭉치 2020’(National Institute of Korean Language, 2022a)과 ‘일상 대화 음성 말뭉치 2021’(National Institute of Korean Language, 2022b)이다. 이 두 말뭉치는 복수의 주제 중에서 선택된 특정 주제를 대상으로 두 명의 화자가 나눈 일상 대화를 녹음 및 전사한 것으로, 2020 말뭉치의 경우 500시간(870,162개의 음성 파일, 2,231개의 텍스트 파일로 총 54.1 GB), 2021 말뭉치의 경우 1,000시간(1,416,216개의 음성 파일, 4,143개의 텍스트 파일로 총 100 GB)의 방대한 분량을 이루고 있다. 음성 자료는 16 kHz 표준화 및 16 bit 양자화를 거친 PCM 형식의 파일로 제공되며, 텍스트 자료는 철자 전사, 발음 전사, 발화자 정보(성별, 연령대, 교육정도, 거주지역 등), 대화자 관계, 대화 주제 등을 담은 JSON 형식의 파일로 제공된다. 한글 맞춤법 및 표준어 규정에 따른 철자 전사 외에 실제 발음에 따라 전사한 발음 전사를 별도로 제공하고 있어 음운론 및 형태론 연구에 활용도가 매우 높다.
말뭉치 조사를 위하여 Kang & Kim(2009)의 빈도 상위 1,000개의 용언 가운데에서 ‘아’형 용언과 ‘오’형 용언을 선택하였다. 먼저 ‘아’형 용언은 총 32개로, 17개의 동사, 13개의 형용사, 그리고 2개의 보조 용언으로 구성되었다(목록은 부록 1 참고). 32개의 용언 중 ‘ㅂ’불규칙 용언이 4개, ‘으’탈락 용언이 4개이고 그 외에는 모두 일반적인 음운 규칙을 따르는 용언이었다. ‘오’형 용언은 총 12개로, 8개의 동사와 4개의 형용사로 구성되었으며 ‘ㅂ’불규칙 용언이 2개, ‘으’탈락 용언이 3개이다.1 어간의 모음뿐 아니라 어미의 종류 역시 중요한 변수이므로 어미 역시 평서 종결형, 의문 종결형, 연결형, 그리고 선어말 어미로 구별하여 검색하였다.2
알- | 않- | 가깝- | 담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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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종결(평서) | 알아/어. | 않아/어. | 가까와/워. | 담가/거. |
b. 종결(의문) | 알아/어? | 않아/어? | 가까와/워? | 담가/거? |
c. 종결(평서높임) | 알아/어요. | 않아/어요. | 가까와/워요. | 담가/거요. |
d. 종결(의문높임) | 알아/어요? | 않아/어요? | 가까와/워요? | 담가/거요? |
e. 연결 | 알아/어*3 | 않아/어* | 가까워/워* | 담가/거* |
f. 선어말 | 알았/었 | 않았/었 | 가까왔/웠 | 담갔/겄 |
2.1.의 예시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의 ‘아’형 용언 어간에 대해 총 12개의 형태(6종의 어미×조화형 및 비조화형)를 검색하여 발화자 정보와 함께 추출하였다. 그 결과 총 127,510개의 형태가 추출되었으며 이 중 조화형 126,821개, 비조화형은 689개로 비조화형의 비율이 5.4%로 나타났으나, 이는 비조화형이 99.3%에 이르는 ‘ㅂ’불규칙 용언에 의한 착시일 뿐,4 ‘ㅂ’불규칙 용언을 제외하면 조화형 126,816개, 비조화형은 118개로, 비조화형의 비율은 0.093%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ㅂ’불규칙 용언의 경우 어간말 모음의 종류와 관계없이 ‘어’형 어미와 결합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지금부터의 논의에서는 ‘ㅂ’불규칙 용언을 제외하고 분석한 내용을 다룬다. 우선 사회언어학의 관점에서 결과를 분석했을 때,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비조화형의 비율이 높아짐이 가장 먼저 확인되었다(그림 1).
성별이나 지역에 따른 차이는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았다. 비조화형의 비율이 여성 0.091%, 남성 0.099%로 카이검정 결과 그 차이가 유의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p=.651). 지역에 따라서는 전라권 화자들의 발화에서 비조화형의 비율이 가장 높았고(0.134%), 경상권에서 가장 낮았으나(0.053%), 전반적으로 0.1% 주위에서 형성되어 지역별 차이가 크다고 볼 수 없다.5 교육정도에 의한 차이 역시 유의미하다고 보기 어렵다. 고졸 화자들의 발화에서 비조화형의 비율이 가장 높았으나(0.133%) 교육정도에 따른 일관성이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 종합하면, 사회언어학적 요인들 가운데 연령대만이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음운/형태적인 특성에 따라 결과를 분석해 보면, 우선 품사에 따라서는 보조 용언(0.190%)>동사(0.156%)>형용사(0.062%)의 순으로 비조화형의 비율이 높았다. 보조 용언에서 그 비율이 높은 것은 이 연구에 사용된 두 보조 용언(않-, 말-)의 특성으로 추정할 수 있다.
어미의 종류별로 비조화형의 비율을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종결높임(-아/어요)의 경우 비조화형이 관찰되지 않았으며, 연결어미(-아/어, -아/어도, -아/어라)의 경우 0.023%, 선어말어미(-았/었)의 경우 0.06%의 낮은 비율을 보였다. Kang(2012)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반말체 종결어미(-아/어)에서 비조화형의 비율이 가장 높았고, 평서(명령 포함)형에 비해 의문형에서 그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알어?’가 14회 출현한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어미의 기능과 상관없이 단음절 어미의 비조화형이 상대적으로 많이 나타난다는 점이 다시 확인되었는데, 다음절 어미가 비조화형으로 나타난 경우는 ‘말어라’가 4회, ‘알어도’가 1회로 총 5회뿐이었다.
어미 종류 | 조화형 | 비조화형 | 비조화형비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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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 평서 | 40,603 | 74 | 0.182 |
의문 | 4,129 | 22 | 0.53 | |
종결높임 | 평서 | 13,818 | 0 | 0 |
의문 | 326 | 0 | 0 | |
연결 | 51,327 | 12 | 0.023 | |
선어말 | 16,613 | 10 | 0.06 |
어간의 빈도는 비조화형의 비율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r=0.0424). 이는 Kang(2016)과 같은 결과이다. 마지막으로, 어간의 음운론적 특성에 따라 분류해 보았다. 어간말에 자음군이 있는 경우(예: 삶-, 앉-) 비조화형의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났으며(0.66%), ‘으’탈락 어간의 경우(예: 따르-, 담그-) 일반 어간에 비해(0.085%) 낮게 나타났다(0.062%).
지금까지 기술된 결과는 혼합모형에서 로지스틱 회귀분석을 실시하였을 때도 동일하게 나타났다.6 사회언어학적 요인 중에서는 나이만이 유의미한 효과가 있었으며(p<.001), 언어학적 요인 중에서는 ‘ㅂ’불규칙 용언이 그 외(규칙 및 ‘으’탈락 용언)에 비해 비조화형의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았고(p<.001), 자음군이 있는 용언이 단자음이 있는 용언에 비해 역시 유의미하게 높은 비조화형 비율을 보였다(p<.001). 마지막으로 종결 어미가 다른 어미들(종결 높임, 연결, 선어말 어미)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은 비조화형 비율을 보였다(p<.001). 어간의 음절 길이, 화자의 성별, 지역, 그리고 교육 정도는 유의미한 차이를 낳지 않았다(p>.005). 말뭉치 분석에서 얻은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3. 청취 실험
기존 연구의 결과에 근거하여 /ㅗ/-모음 어간에 대하여는 비조화형이 나타나지 않거나, 나타나더라도 매우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나타날 것이라 예상하여 비조화형 위주로 탐색하였다. 우선 ‘돕-’과 ‘곱-’과 같이 ‘ㅂ’불규칙 용언임에도 단음절로 구성된 /ㅗ/-모음 어간의 경우 여전히 조화형(도와, 고와)으로만 나타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10개의 어간 중에서 특이하게도 ‘돌-’만이 비조화형으로 쓰인 것이 확인되었고 11개의 사례가 발견되었다.7 11개의 사례 모두 ‘돌어가-’ 혹은 ‘돌어오-’와 같은 연결 어미와의 결합으로 구성되었으며 연구자가 먼저 해당 음성 파일을 청취한 결과 일부는 ‘돌아’로 들릴 수도 있다고 판단하였다.8Ha(2022)가 제시했던 ‘어말 환경’에서 모음 감쇄를 겪어 ‘어’형 어미의 사용이 촉발/확산되었다고 하는 가설과는 그 형태통사적 환경에서 차이가 있으나 ‘돌아/어가-’ 혹은 ‘돌아/어오-’와 같은 환경에서도 ‘-아/어’의 모음이 감쇄되어 분명하게 발음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이 10개의 음성 자료로 청취 실험을 계획하고 진행하였다. 먼저 각 발화에서 /ㅓ/로 표기된 모음에 해당하는 구간의 중간 지점에서 포먼트를 측정하고, 그 단어가 사용된 문장에서 /ㅏ/ 및 /ㅓ/에 해당하는 모음이 있는 경우 마찬가지로 그 모음 구간의 중간 지점에서 포먼트를 측정하였다. 예를 들어 ‘저번에 그 환자가 돌어가셨는데’라는 발화에서 밑줄 친 세 음절에서 각각 /ㅓ/, /ㅏ/, 그리고 목표가 된 모음을 측정하였다.
모음의 포먼트는 여러 변수에 의해 변하므로 포먼트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으나, 청각 인상과 함께 고려하면 많은 경우 화자가 /ㅓ/ 모음을 목표로 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표 29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포먼트상으로는 /ㅓ/ 모음보다 /ㅏ/ 모음에 가까운 경우가 더 많았다. 그리하여 이 모음들은 /ㅓ/ 모음이 의도적으로 발화된 것이라기보다는 음성적 과소실현(undershoot)이라 보고, 한국어 청자들을 대상으로 청취 실험을 진행하였다. 이 모음들이 어떻게 인식되는지 확인하고 발화에서의 변이가 모음조화의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0개의 발화에서 ‘돌아/어’ 부분을 추출하여 1) 추출된 두 음절만 듣고 받아적기, 2) 추출된 두 음절만 듣고 ‘도라’와 ‘도러’ 중에서 선택하기, 3) 전체 문장을 다 듣고 ‘도라’와 ‘도러’ 중에서 선택하기의 세 단계로 청취 실험을 실시하였다. 총 56명(남성 13명, 여성 43명)이 세 단계에 모두 참여하였으며 모든 참여자들이 한 강의실에서 스피커를 통해 듣고 판단하도록 하였으며 각 판단을 /ㅓ/모음, /ㅏ/모음, 기타모음으로 분류하여 기술통계를 실시하였다.10 단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짐을 그림 2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무 정보 없이 판단한 1차에서는 /ㅓ/의 비율이 46.4%로 가장 높았으나 양자택일한 2차에서는 /ㅓ/와 /ㅏ/의 응답이 유사하게 나타났으며(44.5% 대 44.3%), 맥락을 듣고 판단한 3차에서는 /ㅏ/의 비율이 88.0%로 높게 나타났다. 이를 통해 실험 전 가정한 대로, 모든 모음이 /ㅓ/를 목표로 발화된 것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2단계와 3단계에서의 판단 변화는 아직 한국어 청자들이 음성적으로는 ‘돌어’로 들리더라도 대체적으로는 /ㅗ/-어간의 비조화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4. 논의
말뭉치 검색을 통해 비조화형이 어떤 분포를 보이고 있는지 확인하고 간단한 청취 실험을 통해 비조화형의 출현에 대한 가설을 검증해 보았다. 한국어 용언 활용에서의 모음조화 변이가 최근에 시작된 것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중세국어로부터 모음조화의 약화는 꾸준히 이어져 왔음을 고려하면 여전히 변화를 겪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발동(actuation)과 전파(transmission)로 나누어 분석할 필요가 있다(Bermúdez-Otero, 2015). 이 절에서는 선행 연구 및 현재 연구의 결과들을 바탕으로 한국어 용언 활용에서의 모음조화 변화를 발동과 전파의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해 보려 한다.
먼저 비조화형의 발동, 혹은 출현과 관련해서는 Ha(2022)나 Jang(2020)이 주장한 바와 같이 조음적인 관점에서 잘 설명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ㅏ/가 한국어에서 유일한 저모음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음운 감쇄 혹은 음성적 과소실현이 일어나기 쉽기에 /ㅓ/→/ㅏ/의 변화보다는 더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Ha(2022)의 주장과 같이 어말은 장음화가 일어나면서 모음의 상승(예, 같아→같애)이 일어나는 곳임을 고려하면 어말 어미에서 그 변화가 더 뚜렷한 것 역시 잘 설명된다. 그리고 Jang(2020)의 결과처럼 이 연구에서도 자음군이 있을 때 비조화형의 비율이 높은 것 또한 자음군으로 인해 어간의 /ㅏ/와 어미의 모음 사이 동시조음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음운론적으로는 ‘어’형 어미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ㅗ/-모음 어간의 경우에도 음성적으로는 /ㅓ/로, 혹은 /ㅓ/에 가까운 모음으로 실현된 경우들이 발견되었고 3절의 청취 실험 결과 3차에서도 7.86%의 /ㅓ/ 인식률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일부 화자들은 /ㅗ/-모음 어간의 비조화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ㅗ/-모음 어간의 비조화형도 발동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조음적 관점에서 설명되지 않는 사실도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동시조음이 조화형의 중요한 동기라면 /ㅏ/-모음 어간보다는 /ㅗ/-모음 어간에서 비조화형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모음 사각도상 /ㅓ/ 모음은 /ㅏ/와 /ㅗ/의 사이에 있으므로 어간의 /ㅗ/에 이끌려 /ㅏ/가 /ㅓ/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11 그러나 /ㅗ/-모음 어간은 ‘아’형 어미를 고집하고 있다.
따라서 조음적 관점 외에 인지적 혹은 청음적 관점을 동시에 고려해야 모음조화의 변이 및 변화 양상을 설명할 수 있다. 조음적인 이유로 ‘발동’이 되었다면 그것이 언중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전파’되는 과정에는 청자의 판단 또한 중요하게 작용한다. 음운 감쇄에 의해 /ㅏ/-모음 어간 및 /ㅗ/-모음 어간 다음에 ‘어’형 어미가 등장했을 때 청자가 /ㅏ/-모음 어간의 비조화형만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청취적 관점에서는 감쇄를 겪은 모음이 어간의 /ㅏ/ 모음과 쉽게 대비되기 때문에 /ㅓ/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고, 인지적 관점에서는 Kang(2012)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ㅏ/-모음 어간의 경우 어간만 들어도 변별력이 높아12 후행하는 어미의 모음조화가 덜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어미의 종류에 따른 차이 역시 인지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데 반말체 종결 어미의 경우 어간으로부터 분리해서 인식하기 쉽기 때문에 어미의 평준화를 비교적 쉽게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Kang, 2012). 한국어 용언의 경우 반드시 어간과 어미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므로 ‘잡아’의 경우 ‘잡-아’로 형태분석을 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으나, ‘잡아요’의 경우 ‘잡-아-요’로 분석할 가능성 외에 ‘잡아-요’로 분석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잡아’라는 형태를 저장된 형태에서 그대로 가져온다면 왜 단음절 종결 어미에서만 비조화형이 출현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된다. 그리고 이는 연결어미에서 발견된 비조화형을 설명하기에도 적합하다. ‘말어라’가 3회, ‘알어도’가 1회 관찰되었는데 이는 ‘말어’와 ‘알어’가 다수 관찰되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인지적 관점은 ‘으’탈락 어간의 비조화형의 비율이 낮은 이유도 설명한다. ‘담가(담그-아)’나 ‘따라(따르-아)’의 경우 /ㅏ/ 만을 어미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 어간에 비해 더 어렵다고 할 수 있으며 어미를 분석해서 발화하기보다는 저장된 형태, 즉 조화형을 그대로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종합하면, 비조화형은 종결 어미에서 일종의 변이형으로 시작되어 /ㅏ/-모음 어간과 결합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현재는 다른 어미로의 확산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연구의 결과 중 기존의 연구와 비교했을 때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상당히 낮은 비조화형의 비율이다. Hong(2008)에서 /ㅏ/-모음 어간의 비조화율이 10.27%임을 고려하면 그 차이가 매우 크다. 또한 Kang(2016)에서는 /ㅏ/-모음 어간과 종결 어미의 결합형에 대해서는 조화형과 비조화형을 동일하게 선호한다는 응답이 31.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난 원인을 추정해 보면 Hong(2008)에서 사용한 세종 말뭉치가 형태소 분석까지 완료된 정밀 전사 말뭉치라 한다면 이 연구에서 사용한 말뭉치는 간략 전사 말뭉치에 가깝기에 ‘아’형 어간으로 판단된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본다. 또한 녹음이라는 환경이 이른바 ‘표준형’에 가까운 발음을 유도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젊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더 나아가 어형에 대한 인식과 실제 발화는 다를 수도 있는데(Chambers, 2013), 아래 몇몇 사례들을 통해 관찰되듯이 많은 사람들이 듣는 노래들에서 이미 비조화형은 자주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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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나도 알어 (매드클라운,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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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유롭게 챠트 위를 날어 이제는 인기라는 뜬구름 어떻게 타고 노는지 좀 알어 (토이, ‘인생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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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장기하, ‘부럽지가 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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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다시 돌아가더라도 오늘 하루 곱씹으며 행복하게 살어 나중에 다시 돌아가더라도 오늘 하루 곱씹으며 나를 잊지 말어 (싸이,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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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가 없어 겉과 속이 다르게 살아야 돼 그게 뭐든 간에 마음 깊숙이에 꾹꾹 눌러 담아야 돼 모가 난 돌이 정에 맞잖아 뭐를 숨기고 참아야 돼 (싸이, ‘밤이 깊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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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 어장 그런 거 난 잘 몰러 (방탄소년단, ‘상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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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혼자있더라도 잘 놀어 (시키야820, ‘숨’)
(4.1.a)의 경우 이 가사의 전후에 나타나는 ‘모르겠어’, ‘같았어’ 등과 운을 맞추기 위해 비조화형을 선택했다고 볼 여지도 있으나 (4.1.b)–(4.1.d)의 경우는 조화형으로도 운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비조화형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4.1.e)는 말뭉치 관찰 결과와 같이 어말 어미가 아닌 경우는 조화형이 사용되는 것을 보인다.13 그리고 앞서 기술했듯이 /ㅗ/-모음 어간의 경우에도 비조화형이 관찰된다[(4.1.f), (4.1.g)]. 정리하면, 대중적인 문화에서는 실제 발화에서보다 비조화형의 사용 비율이 높은 것으로 보이고 이는 한국어 화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5. 맺음말
지금까지 말뭉치 검색 결과를 통해 선행 연구들이 제시했던 한국어 용언 활용에서 보이는 모음조화 변이의 양상을 확인하였다. ‘ㅂ’불규칙 용언들은 이미 ‘어’형 어미로 전환이 완료되어었고, /ㅏ/-모음 어간의 경우 단음절 종결 어미의 결함하는 경우 비조화형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기존 연구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던 기타 어미(연결 어미 및 선어말 어미)에서도 소수이지만 비조화형을 발견하였고, /ㅗ/-모음 어간에서도 역시 소수이지만 비조화형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양상을 발동과 전파로 나누어 발동은 주로 조음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전파는 청취 및 인지적 관점에서 설명하였다. 요약하면, 어말에서 음운 감쇄 또는 과소 실현이 일어나 변이가 발생하고, 청자는 어간의 마지막 모음이 /ㅏ/일 때 모음의 감쇄를 더 잘 인식하고 (또는) 어간의 모음이 /ㅏ/일 때는 어간의 변별력이 높아 조화형의 필요성이 덜하여 /ㅏ/-모음 어간 뒤에서 비조화형이 먼저 받아들여졌다고 본다. 또한 다음절 어미와는 달리 단음절 어미의 경우 어미를 독립적으로 인식하기 쉬워 일종의 평준화인 변화를 더 쉽게 겪는다고 분석하였다. 다만 어간 및 어미에 따른 모음의 변이가 다른지에 관한 조음 실험과 /ㅏ/ 이후에 모음의 감쇄를 더 잘 인식하는지에 대한 청취 실험을 후속 연구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남은 질문은 언어 습득에서 변화를 이끌 만한 요인이 있는가이다. 형태론적 관점에서는 현대 한국어에서 보이는 ‘어’형 어미의 확산을 평준화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중세 한국어에서 현대 한국어로 넘어오면서 ‘아’형 어미를 취하는 양성 모음의 비중이 줄어들어 ‘어’형 어미가 우세하게 되고 이러한 빈도의 비대칭성 및 형태소의 교체를 줄이려는 화자들의 의도로 인해 ‘어’형 어미로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Kang, 2002). Wordbank(wordbank.stanford.edu)에 등록된 18개월에서 36개월 사이 아동들의 발화에서 나타나는 용언을 보면 ‘아’형 어미를 취하는 양성 어간이 52개(25.4%),14 ‘어’형 어미를 취하는 음성 어간이 118개(57.5%), 그리고 ‘해’처럼 ‘애’로 실현되는 어간이 35개(17.1%) 등장한다. 참고로 영어의 경우 총 103개의 동사가 이 기간의 아동 발화에서 관찰되는데 규칙 동사가 59개(57.2%), 불규칙 동사가 44개(42.8%)이고, 이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서 과도한 일반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언어 발달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언어자료가 부분적인 경우가 많고 형태론적 생산성은 주로 범주적으로 일어나 결국 아이들이 과도한 일반화를 하는 상황이 다수 발생하는 것을 고려한다면(Lignos & Yang, 2016), 다음 역시 예상해 볼 수 있다. 한국어를 학습하는 아동의 입장에서 과반의 어간이 절대적으로 ‘어’형 어미를 취하고 /ㅏ/-모음 어간의 경우에도 상대적으로 ‘어’형 어미를 취하는 사례들을 접한다면, 습득 과정에서 과도한 일반화가 일어나리라 예상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이후의 과제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