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반언어적 표현(paraverbal)이란 대화에서 언어 자체가 아닌 말소리의 톤, 속도, 억양, 강세, 침묵, 웃음 등 비언어적 요소를 말하며, 이는 의사소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국어는 대화에서 주어 생략, 간접적 표현, 눈치와 같은 맥락 읽기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Byon, 2006), 맥락과 비언어적 요소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고맥락(high-context) 언어로 분류된다(Jeong, 2019). 고맥락 문화에서는 말이나 글보다 상황, 관계, 비언어적 요소 및 묵시적 표현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반언어적 표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반언어적 요소 중 발화자와 수신자 간의 침묵(inter-turn silence)은 발화자의 발화가 끝난 후 수신자가 응답하기 전까지 나타나는 짧은 시간의 공백을 의미한다. 이러한 침묵은 단순히 발화의 부재를 넘어 대화 중 문제(예: 동의 부족, 협조 의미 부족 등)를 암시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Roberts et al., 2006). 한국의 고맥락 문화에서는 침묵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받아들여지며, 대화 맥락을 파악하고 화자의 의도를 읽어내는 데 중요한 신호로 작용한다(Kang, 2017). 예를 들어, 침묵 시간은 한국어 담화에서 ‘주제 말 드러내기, 주의 집중하기, 후행 정보 강조하기, 회상 시간 벌기, 감정 드러내기’ 등 다양한 담화적 기능을 수행한다(Yang, 2002). 이러한 침묵의 담화적 기능은 발화의 맥락과 의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발화자와 수신자 간의 침묵은 대화 참여자가 메시지를 해석하거나 다음 발화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활용되며, 대화의 구조와 흐름을 조정하는 데 기여한다. 따라서, 침묵은 단순한 시간의 공백이 아닌 발화자의 의도와 청자의 반응을 조율하는 의사소통 도구로 기능하며 발화와 상호작용해 의미를 구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행(speech act)은 발화자가 의도한 메시지와 태도를 전달하는 기본 단위로, 침묵과 같은 반언어적 요소는 화행의 의미를 보완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 화행은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화자가 드러내고자 하는 태도(the type of attitude being expressed)”를 의미한다(Bach, 1994). 화행은 언약화행(commissives), 지시화행(directives), 진술화행(constatives), 인사화행(acknowledgements)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Bach & Harnish, 1979), 이중 지시화행은 화자가 청자에게 특정 행동을 기대하거나 요청하는 의도가 담긴 발화 유형으로 정의된다. 요청(request)과 평가(evaluation)는 지시화행의 대표적인 예로, 요청 화행은 청자에게 협조나 도움을 요구하거나 특정 행동을 기대할 때 주로 나타나며, 화자의 의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평가 화행은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화자의 의견을 표현하거나 판단을 내리는 발화로, 청자의 동의나 반응을 유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 요청과 평가 화행은 각각의 의사소통 목적에 따라 청자에게 전달되는 방식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침묵과 같은 반언어적 요소가 중요한 신호로 작용한다. 요청 화행에서는 침묵이 화자가 협조를 기대하고 있음을 나타내거나, 때로는 불확실성이나 망설임을 암시할 수 있다. 한편, 평가 화행에서는 침묵이 청자에게 동의나 공감을 유도하거나, 경우에 따라 정보의 신뢰도를 약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요청과 평가 화행 모두 침묵의 길이에 따라 청자가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으며, 이는 대화의 효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침묵 시간과 화행 유형은 청자의 긍정적/부정적 인식(valence judgment)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Roberts & Francis, 2013; Roberts et al., 2006, 2011). 침묵 시간이 청자가 감정을 지각하는 데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 연구들은 침묵 시간이 길어질수록 청자의 긍정적 평가가 감소한다는 공통적인 결과를 도출했다(Roberts & Francis, 2013; Roberts & Norris, 2016; Roberts et al., 2006, 2011). 연구에 따르면, 침묵 시간이 짧을수록 화자의 협조 의지와 동의 수준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며, 반대로 침묵이 600 ms 이상 길어질 경우 부정적 평가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Roberts & Francis, 2013; Roberts et al., 2006). Roberts & Norris(2016)은 각 화행에서 발화자와 수신자 간의 침묵 시간을 조작하여 청자에게 들려준 결과, 침묵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요청에서는 협조 의지가, 평가 상황에서는 동의 정도가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침묵 시간이 조작된 동일한 음성 자료를 영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사용 청자 집단으로 나누어 분석한 결과, 청자의 언어에 관계없이 침묵 시간이 길어질수록 협조나 동의에 대한 평가가 유의미하게 감소함을 보여주었다(Roberts et al., 2011). 더불어, 청자의 긍정적인 평가는 600 ms의 침묵 시간을 기준으로 감소하기 시작하며, 침묵 시간이 700–800 ms 사이가 될 때 급격히 감소한다는 임계치를 확인하였다(Roberts & Francis, 2013). 이는 침묵을 문제로 인식하는 사회적인 경향이 보편적임을 나타낸다(Stivers et al., 2009).
본 연구에서는 화행 유형 중 지시화행에 초점을 두어 침묵 시간이 화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지시화행에는 금지, 요구, 요청 등의 화행이 포함된다(Kim et al., 2008). 평가 화행의 경우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판단을 표현하는 경우 진술화행에 포함되지만, 청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의도로 쓰였을 경우 지시화행에 포함된다. Roberts et al.(2006)은 발화 간 침묵이 의미 구성과 상호작용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자 요청과 평가라는 두 가지 지시화행을 선정해 연구를 진행했다. 특히 요청 상황에서는 짧은 침묵이 높은 수락 의지를 나타내는 반면, 긴 침묵은 거부나 비협조적 태도로 해석된다(Roberts & Francis, 2013). 평가 상황에서는 긴 침묵이 동의 부족이나 신중함의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Roberts et al., 2011).
이러한 침묵에 대한 수용 정도는 문화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탈리아어 화자는 비교적 말을 많이 하고 대화 차례 사이의 침묵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일본어 화자는 말수가 적고 침묵을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Roberts et al., 2011). 일본어 문화에서는 대인관계에서 위계와 조화를 중시하는 사회문화적 규범이 강하게 작용하며(Watanabe, 2005), 이러한 문화적 특성이 침묵에 대한 수용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즉, 일본어 화자는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대화에서 침묵이 길어지더라도 부정적인 반응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숙고하는 신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Roberts et al., 2011). 이러한 특징은 한국어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침묵이 단순한 언어적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맥락(예: 화자와 청자의 관계, 나이, 예의 체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장자나 상위 권위자와의 대화에서는 침묵이 존중의 표현이 될 수 있는 반면, 친구나 동료와의 대화에서는 신속한 응답이 기대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다른 언어와 문화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는 한국어와 같은 고맥락 언어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특징을 고려할 때, 침묵 시간과 화행 유형이 수신자에 대한 제3의 청자의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발화자와 수신자 간의 침묵과 화행 유형이 한국어 의사소통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제3의 청자가 발화자와 수신자 간 대화를 듣고, 화행 유형(요청, 평가)과 침묵 시간(600, 1,200, 1,800 ms)에 따라 수신자가 발화자의 말을 긍정적(valence-positive) 또는 부정적(valence-negative)으로 인식하는지를 평가함으로써, 발화 간 침묵 시간과 화행 유형이 한국어 의사소통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대화에서 침묵과 화행 유형이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나아가 한국어와 같은 고맥락 언어에서 침묵의 역할에 대해 심층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2. 연구방법
본 연구는 20–30대 청년 1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연구에 참여한 대상자는 남성 50명, 여자 51명으로, 성별 간의 비율을 균등하게 맞추었다. 대상자는 모두 성장 과정에서 말-언어 발달상 문제가 없으며, 청력에 문제가 없는 경우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대상자 정보는 표 1에 제시하였다.
Characteristic | Range | N | M (SD) |
---|---|---|---|
Age (years) | 19–29 | 86 | 24.01 (2.31) |
30–39 | 15 | 32.07 (2.84) | |
Gender | Male | 50 | |
Female | 51 |
대화의 배경은 친구들 간 요청과 평가의 가상 전화통화 상황으로 설정하였다. 대화의 주제 중 해당 장소까지 태워달라는 요청 상황과 가구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 평가 상황은 선행연구(Roberts & Francis, 2013; Roberts et al., 2006, 2011)에서 사용된 대본(부록 1)을 한국어로 번안하여 사용했으며, 20–30대 청년층이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주제를 고려하여 책반납을 부탁하는 요청 상황과 영화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 평가 상황을 추가하였다(부록 2). 대화는 발신자가 수신자의 이름을 부르며 자연스럽게 시작하도록 구성하였으며, 수신자가 발신자의 이름을 부르며 답하도록 하여 피험자가 대화의 발신자와 수신자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각 대화 시나리오는 수신자와 발신자의 대화순서가 각 두 차례씩 이루어지도록 구성하여 대화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유지되도록 하였다. 요청 상황에서 수신자의 응답은 “그래”로 설정하였으며, 이는 동의의 기능으로 사용하며 이전 발화 내용에 대해 동일한 입장을 표현하거나 동조하는 의미를 가진다(Yang & Jeon, 2016). 평가 상황에서 수신자의 응답은 “맞아”로 설정하였으며, 이는 대화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같음을 표현하고 공감을 나타낸다. 요청과 평가 화행 상황에서 두 응답은 긍정의 의미를 가지고 있도록 설정하였고, 수신자가 망설임없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도록 대화 시나리오를 구성하였다.
제작한 4개의 대화 시나리오는 모두 조용한 공간에서 녹음하였다. 음성의 특성을 통제하기 위해 피험자와 연령이 비슷한 두 명의 여성 언어병리학 전공생이 발신자와 수신자의 역할을 동일하게 녹음하여, 대화 간 음향학적 변수를 최소화하였다. 또한, 대화가 전화 상황임을 청자가 인지할 수 있도록 대화 시작 전에 전화벨 소리를 삽입하였다. 수신자의 마지막 응답은 Praat(ver. 6.2.22, Boersma & Weenink, 2021)으로 편집하여 통일하였다. 선행연구(Roberts et al., 2011)에서는 침묵 시간을 0, 600, 1,200 ms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한국어는 발화자 간 중첩(overlap)을 부정적으로 인지하는 특성이 있는 고맥락 언어로, 침묵의 유무가 상대방에 대한 태도나 감정 해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적절한 휴지(pause)를 포함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운 대화 구조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Kim(2003)의 연구에 따르면 대화 내에서 발화의 중첩으로 인한 말중단시키기는 진행 중인 말을 방해하게 되므로 화자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고, 발화자의 권리를 고의적으로 빼앗는 것으로 볼 수 있어 부정적인 언어행위로 평가된다. 0 ms 침묵 시간은 발화자와 수신자 간의 자연스러운 전환 과정 없이 즉각적인 응답을 가정한 것으로 실제 한국어 화자들이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발화 간 침묵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고자 본 연구에서는 침묵 시간 0 ms는 제외하였다. Seol & Jeon(2018)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 간의 친밀한 대화에서 질문 후 대답하기까지의 평균 시간은 1,260 ms이며, 최소 시간은 740 ms로 나타났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한국인 발화자 교체 지점 침묵 시간의 평균값인 1,200 ms을 중간값으로 설정하였고, 한국어 맥락에서 침묵 시간의 용인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1,800 ms를 추가하였다. 결과적으로 침묵 시간을 600, 1,200, 1,800 ms로 설정하여 실험을 진행하였다. 편집 과정에서 Praat(ver. 6.2.22, Boersma & Weenink, 2021)을 사용하여 minimum pitch를 100 Hz, silence threshold를 –25.0 dB로 설정하였으며, 발화자와 수신자 간의 침묵 시간을 각 시나리오에 따라 600, 1,200, 1,800 ms로 조정하였다. 이를 통해, 침묵 시간이 실험의 주요 독립변수로 정확히 반영되도록 통제하였다.
총 4가지의 시나리오(요청 상황 2개, 평가 상황 2개)를 각 3가지의 침묵 시간(600, 1,200, 1,800 ms)으로 조정하여 총 12개의 음성 파일을 제작하였다. 이 음성 파일에 대한 문항은 온라인 설문지(https://forms.gle/sN7Ww7KpRyQwNAjA6)를 통해 배포하였다. 순서 효과를 배제하기 위해, 같은 침묵 시간이나 동일한 시나리오가 연속해서 나오지 않도록 조정한 4개의 설문지를 균등하게 배포하였으며, 설문 데이터는 3일간 수집하였다. 피험자가 발화 간 침묵 시간이 각 문항 간의 차이점이라는 것을 미리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설문은 ‘의사소통 연구’ 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청자에게 주의사항으로 소음이 없는 조용한 환경에서 설문을 진행하며, 문항의 음성을 가급적 1회만 청취하고, 길게 고민하지 않고 즉각적이고 빠르게 응답할 것을 안내하였다. 설문 참여 전에 음량 조절 안내 영상을 제공하여 피험자가 실험 음성을 쾌청하게 들을 수 있는 적절한 음량으로 조정한 후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피험자들이 최대한 일관된 조건에서 실험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3. 연구 결과
침묵 시간과 화행 유형에 따른 청자의 긍정-부정 인식 평정 점수의 기술통계 결과는 표 2와 같다.
이원배치 반복측정 분산분석 결과, 침묵 시간에 대한 주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였다[F(2, 600)=90.907, p<.001]. 이에 따라, Bonferroni 사후 검정 결과, 600 ms와 1,200 ms (p<.001), 600 ms와 1,800 ms(p<.001), 1,200 ms과 1,800 ms(p<.001) 간에 청자의 긍정-부정 인식 평정 점수에서 유의한 차이가 있었다(그림 1). 화행 유형에 대한 주효과도 통계적으로 유의하였다[F(1, 600)=23.676, p<.001]. 청자는 평가 화행보다 요청 화행 대화 상황에서 더 긍정적으로 지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1). 침묵 시간과 화행 유형 간의 이차 상호작용은 유의하지 않았다[F(2, 600)=0.979, p>.05].

4. 논의 및 결론
본 연구는 발화자와 수신자 간의 침묵 시간과 화행 유형이 청년 청자가 지각하는 수신자의 발화자에 대한 긍정 및 부정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특히 요청과 평가라는 두 가지 지시화행 유형을 중심으로, 발화자와 수신자 간의 침묵 시간이 짧을 때와 길어질 때, 청자가 이를 어떻게 지각하고 해석하는지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침묵이 대화의 흐름과 감정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 결과에 대한 논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발화자와 수신자 간의 침묵 시간은 청년 청자가 수신자의 발화자에 대한 긍정 및 부정 평가 정도에 유의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침묵 시간이 길어질수록, 수신자가 발화자의 요청이나 평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결과는 Roberts et al.(2011)의 연구 결과와 일치하며, 긴 침묵이 대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불확실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Brennan & Willams (1995)와 Jefferson(1989)의 연구에서도 600 ms의 짧은 침묵은 신속하고 확실한 의사소통으로 해석되어 긍정적 평가를 받는 반면, 1초 이상의 긴 침묵은 사회적 어색함과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가시켜 부정적 평가를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Jefferson(1989)은 1.8초간의 침묵이 특정 문맥에서 대화의 흐름을 중단시키거나 상대방에게 어색함을 유발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참여자가 명확한 발화 없이 멈출 경우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낄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와 같이 침묵 시간에 따른 청자의 평가 변화는 Roberts & Francis(2013)에서 제시한 침묵 임계치(threshold)와도 관련된다. 일례로, 침묵 시간이 600 ms 이후로 청자의 긍정적 평가가 감소하기 시작하며, 약 700–800 ms를 넘어서면 부정적인 반응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결과를 뒷받침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경향이 한국어라는 고맥락 언어 환경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하였으며, 이는 침묵 시간과 같은 비언어적 단서가 의사소통에서 보편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둘째, 발화자의 화행 유형은 청년 청자의 수신자의 발화자에 대한 긍정 및 부정 평가 정도에 유의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 화행에 비해 요청 화행에서 청자는 전반적으로 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며, 이는 요청 화행이 수신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요구하는 특성 때문으로 해석된다. Brown & Levinson(1987)의 체면 이론(face theory)에 따르면, 요청은 상대방의 자율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어 부정적 체면(negative face)을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따라서 요청에 대한 응답이 지연되거나 침묵이 길어지면, 화자는 이를 요청을 거절하거나 망설이고 있다고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짧은 침묵은 수신자가 요청을 신속히 수용하고 협조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나타내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한편, 긍정적 체면(positive face)이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로, 청자의 동의나 지지가 없는 경우에 화자는 자신의 의견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 있다. 다만 평가는 발화자가 제공한 정보나 의견에 대한 피드백이 포함되므로 청자가 더 비판적이거나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청자가 평가를 신뢰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의 처리가 필요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긴 침묵은 정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거나 불확실성을 증가시켜 부정적 평가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Brennan & Williams, 1995). 본 연구에서도 평가 화행에서 긴 침묵은 수신자가 발화자의 의견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발화자와 수신자 간의 침묵 시간과 화행 유형이 한국어 의사소통에서 가지는 중요성을 확인하였다. 특히, 침묵 시간이 단순한 공백을 넘어 대화의 맥락과 화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중요한 신호로 작용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청 화행에서는 짧은 침묵과 신속한 응답이 상대방의 협조 의지를 높게 평가하게 만들며, 평가 화행에서는 청자가 더욱 신중하게 정보를 처리하게 되어 침묵이 길어질수록 신뢰도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침묵 시간이 발화자의 의도를 전달하고 청자의 평가를 조정하는 중요한 비언어적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대화의 맥락과 목적에 따라 적절한 침묵 시간과 화행 유형을 조정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이에 따라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좌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본 연구의 제한점과 후속 연구에 대한 제언은 다음과 같다. 본 연구의 참여자는 20–30대 청년층으로 한정되었으므로, 연구 결과를 다른 연령층이나 다양한 문화권에 일반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 또한, 가상의 대화 상황에서 제3자인 청자가 수신자가 지각하는 긍정 및 부정 인식 정도를 판단하는 방식으로 실험이 설계되었기 때문에, 실제 대화 상황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나 감정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본 연구에서 사용된 요청과 평가 시나리오가 고맥락(high-context) 언어와 저맥락(low-context) 언어 간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 사용한 시나리오는 선행연구(Roberts & Francis, 2013; Roberts et al., 2006, 2011)에서 활용된 영어 대화문을 한국어로 번역 및 수정하여 적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화문이 한국어의 고맥락적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는지 추가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대화가 비교적 단순한 일상적 요청 및 평가 상황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한국어의 고맥락적 요소(예: 암시적 표현, 간접적 요청, 사회적 관계에 따른 언어적 차별성 등)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어 화자들이 실제로 요청이나 평가를 수행할 때, 맥락을 보다 중시하는 표현(예: 간접화법, 높임말 사용 여부, 맥락적 단서 활용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실험에 사용된 대화문이 고맥락·저맥락 언어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면, 연구 결과에서 문화적 차이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으며, 회사, 학교 등 다른 맥락의 대화의 경우에도 이에 따른 차이가 없는지 추가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고맥락 언어인 한국어와 저맥락 언어인 서양 언어 간의 유사한 침묵의 영향이 나타난 이유를 파악해보았을 때, 본 연구에서 사용된 대화 맥락이 친밀한 관계(friendship context)에서 이루어진 구어적 상호작용이라는 점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고맥락 언어와 저맥락 언어 간의 차이는 주로 공식적 맥락(formal settings)이나 위계가 중요한 상황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으나 본 연구의 실험 환경은 친구 사이의 대화로 설정되었다. 즉, 서양 언어와 유사한 응답 패턴이 나타난 이유는 연구에서 설정한 대화 맥락이 비교적 낮은 맥락 의존성을 요구하는 일상적 상호작용이었기 때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본 연구에서는 한국어 화자들이 즉각적인 응답(0 ms)을 부자연스럽게 느낄 가능성이 있어 0 ms 침묵을 제외하고 실험을 진행하였다. 따라서 일본어와 비교했을 때, 600 ms 이상의 침묵이 발생할 경우 협조적인 태도가 감소한다고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일본어에서 보고된 결과와 차이가 나타난 것은 한국어 화자들이 긴 침묵을 평가하는 방식이 일본어 화자들과 다소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향후 연구에서는 실제 대화 데이터를 기반으로 침묵 시간과 화행 유형의 영향을 비교 분석할 필요가 있으며 명확한 문화적 차이를 반영할 수 있는 대화문의 개발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발화자의 운율적 단서와 침묵 시간등을 변수로 포함한다면, 비언어적 단서의 역할을 보다 다차원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